매출 465억엔(약 6092억원),영업손실 494억엔(약 6472억원).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반도체를 따라잡겠다고 공언했던 D램 업계 3위 엘피다가 지난 13일 내놓은 1분기 성적표는 초라했다. 무엇보다 시장점유율이 뚝 떨어졌다. 지난해까지 엘피다는 15%대의 점유율로 19%대의 하이닉스를 바짝 뒤쫓고 있었다. 하지만 올해 1분기에는 미국 마이크론(14.6%)의 벽도 넘지 못했다.

영업손실률 격차는 거의 경악할 만하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의 1분기 영업손실률이 각각 12.8%와 39.2%에 그친 반면 엘피다는 106%에 달했다. 100원어치의 제품을 팔아 106원의 손해를 봤다는 의미.업계에서는 엘피다가 예전의 경쟁력을 되찾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올해 시설투자액을 지난해보다 무려 55% 줄인 400억엔으로 책정한 대목에 이르러서는 사실상 '백기투항'의 뜻이 아니냐는 분석까지 나온다.

◆끝이 보이는 반도체 '치킨게임'

삼성전자와 하이닉스의 D램시장 지배력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지난 1분기 두 회사의 D램시장 점유율은 각각 34.3%와 21.6%로 나타났다. 두 회사의 점유율을 합하면 55.9%에 달한다. 지난해 1분기와 비교하면 한국 업체들의 점유율이 5%포인트 이상 높아졌다. 2년여간 이어져 온 반도체 '치킨 게임(출혈 경쟁)'이 마무리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반도체 가격도 조금씩 반등하고 있다. 반도체 거래 사이트인 D램익스체인지는 최근 D램 주력 제품인 1기가비트(Gb) 667㎒ DDR2의 5월 상반기 고정거래가(주요 거래선 납품가)가 1.13달러로 회복됐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11월 이후 6개월 만에 1달러를 넘어선 것.낸드플래시 주요 제품인 16Gb 멀티레벨셀(MLC) 고정거래가격도 4.3달러까지 올랐다. 낸드플래시 가격이 4달러대를 회복한 것은 10개월 만이다.

◆과잉 투자가 빚은 비극

반도체 치킨게임의 전조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2003년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하락하는 것이 정상인 D램 반도체 가격이 50% 이상 오르면서 선두권 업체를 중심으로 시설투자 경쟁이 빚어졌다.

이 같은 기조는 2004년과 2005년에도 이어졌다. 대만의 난야,프로모스 등 후발 업체들도 이 시기 일제히 생산량을 늘리는 작업을 벌였다. 2007년 1월 마이크로소프트(MS)가 5년 만에 새로운 운영체제(OS) 윈도비스타를 내놓으면 반도체 수요가 급증할 것이라는 전망이 시설투자 경쟁에 불을 붙였다. 당시 미국 반도체산업협회는 윈도비스타 효과로 반도체시장이 연평균 14.6%씩 성장할 것이라는 섣부른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반도체 업계가 된서리를 맞기 시작한 것은 2007년부터.경쟁적인 증산으로 반도체 수요가 공급을 앞지르면서 D램 가격이 급락하기 시작했다. 기대했던 윈도비스타 효과는 거의 없었다. 3월 2.91달러였던 512Mb D램 현물가(시장 거래가)는 6개월 만에 1.45달러로 주저앉았다.

◆굳어진 1강3중 체제

메모리 반도체 업계 치킨게임의 결과는 '1강3중' 체제다. 1강은 업계 1위인 삼성전자를,3중은 하이닉스 엘피다 마이크론 등을 의미한다. 업계 5위인 키몬다는 올해 초 파산했으며 난야,프로모스 등 대만 군소업체들은 독자적인 생존이 어려운 상황으로 내몰렸다.

이 같은 상황에서 엘피다와 마이크론 등이 하이닉스와 견줄 수 있는 세력으로 거론되는 것은 대만 업체들과 연계할 가능성 때문이다. 대만 정부는 지난해 말부터 자국 내 6개 반도체 회사를 통합한 뒤 일본 엘피다,미국 마이크론과 제휴하는 방안을 추진해 왔다. 아울러 자국 반도체 업체들에 정부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일본 정부 역시 엘피다에 대규모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방안을 놓고 고심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회사별로 이해관계가 상이해 가까운 시일 내에 '반(反) 한국 연합군'이 출범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면서도 "강도 높은 전략적 제휴가 이뤄지고 각국 정부 보조금까지 투입되면 한국 업체들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본격적인 회복은 언제부터

반도체가격이 바닥을 쳤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가격 회복 속도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비메모리 부문 1위를 달리고 있는 인텔의 최고경영자(CEO) 폴 오텔리니는 최근 "지난 4월부터 반도체 경기가 본격적으로 상승 곡선을 타고 있다"며 "향후 반도체 경기에 대해 낙관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메모리 업계 1위인 삼성전자는 신중론을 고수하고 있다. 반도체 경기가 살아나려면 글로벌 경기 침체 국면이 타개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권오현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 사장은 "최악의 상황은 지나고 있지만 본격적인 반도체 시황 회복 시점을 점치기는 어렵다"며 "지난해보다 감소한 PC와 휴대폰 수요가 살아나야 반도체 경기도 기지개를 켤 것"이라고 말했다.

반도체 시장조사기관인 아이서플라이의 기조도 삼성전자와 엇비슷하다. 이 기관은 달러를 기준으로 한 D램과 낸드플래시 시장 규모가 올해 각각 200억달러와 89억달러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해에 비해 15%가량 시장 규모가 줄어들 것으로 내다본 것이다.

반도체 시장이 다시 활기를 띨 것으로 예상한 시점은 내년이었다. 올해에 비해 D램은 15%,낸드플래시는 10%가량 시장이 확대된다는 게 아이서플라이의 전망이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