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가 '21세기 흑사병'이란 대재앙 공포로 떨고 있다. 사스(SARS · 중증 급성호흡기증후군)나 조류인플루엔자(AI)와 맞먹는 엄청난 전염력과 높은 치사율을 보이는 '돼지독감'이 멕시코에서 갑작스레 발생,손쓸 새도 없이 미국까지 퍼지면서 전 세계가 '펜데믹(전염병에 의한 대규모 사망)' 공포에 휩싸인 것이다.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돼지독감 바이러스가 이미 폭넓게 퍼졌고 바이러스를 봉쇄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밝힌 가운데 국제보건기구(WHO)도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한국을 비롯해 주요 국가들은 바이러스 유입을 막기 위한 긴급 방역 조치에 들어갔다.

WHO가 '국제적 비상우려 사안'을 선포하고 나선 것은 돼지독감이 사람 간 감염이 가능한 신종 바이러스라는 점과 사망률이 높다는 점 때문이다. 원래 돼지독감은 미국서 1년에 1명 미만의 사람이 걸릴 정도로 드문 병인 데다 전염도 거의 되지 않는데 이번에 변종 바이러스가 발생하면서 10여일 만에 1000명 이상의 사람이 감염되고 사망률도 5~10% 수준으로 높게 나타났다. WHO와 로베르트 코흐 연구소 등은 "쉽게 변종이 생겨 예방백신을 만드는 것은 현재로선 불가능하다"고 전했다.

특히 바이러스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빠르게 퍼지고 있는 점이 문제다. 독일 주간지 슈피겔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변종바이러스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확산되고 있다"며 "돼지독감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돼지와 전혀 접촉이 없던 사람들이 환자의 대부분"이라고 전했다. WHO 등은 중세 유럽 인구의 30%를 희생시킨 흑사병이나 2500만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스페인독감(1918~1919년),수십만명이 사망한 홍콩독감(1968년) 수준으로 전염병이 확산되는 펜데믹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이번 멕시코발 돼지독감은 지난 13일 멕시코 남부 산악지대 오하카주에서 시작된 뒤 10여일이 채 안돼 미국 영국으로까지 확산됐다. 멕시코에선 멕시코시티와 멕시코주를 거쳐 북부 산 루이스 포토시 등 멕시코 각지로 확산됐다. 미국 텍사스와 캘리포니아,중부 캔자스,동부 뉴욕에서도 돼지독감 의심환자가 병원검사를 받았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멕시코시티에서 돌아온 브리티시항공 승무원 한 명이 독감유사 증상을 보여 격리치료 중"이라고 전했다. 프랑스 보건부 국장 디디에 우생은 26일 "멕시코에서 돌아온 프랑스인 2명이 일단 환자로 의심된다"며 "다른 여행객들도 유사한 증세를 보일 것으로 우려된다"고 밝혔다. 이날 이스라엘에서도 20대 청년이 멕시코 여행에서 돌아온 뒤 돼지 독감 의심 증세로 입원했다고 병원 관계자가 밝혔다. 뉴질랜드에서도 여행객들이 독감 양성반응을 보였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