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개발사들이 빌트인으로 납품받는 에어컨값을 무조건 깎아달라고 요구한다. 지난 4년간 이런 일은 처음이다. " LG전자 두바이 주재원으로 일하며 에어컨 판매를 맡고 있는 안혁성 차장은 "판매 실적이 올 들어 반토막 났다"고 밝혔다. 여름 날씨가 40~50도까지 치솟는 두바이에서 에어컨은 필수 상품이자 경기의 바로미터다.

◆거품 빠지는 경기

최근 몇 년간 눈부신 성장으로 "사막 위에 기적을 꽃피웠다"는 찬사를 들었던 두바이 경제가 흔들리고 있다. 작년 초 6109.67까지 치솟았던 두바이 증시 지수는 올 들어 1500대로 급락한 상태다. 아랍에미리트(UAE)의 수도 아부다비로부터 100억달러의 구제금융을 받는 굴욕도 감내해야 했다.

거품 빠지는 두바이…"집값 70% 떨어진다"
두바이 경제가 흔들리는 가장 큰 이유는 부동산 경기 침체다. 글로벌 금융사인 UBS는 22일 두바이의 주택 가격이 최고치를 찍었던 지난해보다 70% 급락할 것이란 암울한 분석을 내놨다. 현재 주택 가격은 최고점 대비 25% 떨어진 상태다. UBS는 일자리를 잃은 외국인 근로자들이 두바이를 떠나면서 지난해 160만명이었던 인구가 향후 2년간 10% 감소할 것이며,이로 인해 주택 공실률이 2010년엔 최대 30%까지 뛸 것으로 전망했다.

두바이 시내의 메인도로 중 하나인 셰이크 자예드 로드에선 현지 최대 부동산개발업체인 '이마르'와 '나킬'의 깃발이 휘날렸다. 63빌딩 높이의 두 배는 넘어 보이는 건물들이 곳곳에서 공사 중이었다. 바다를 메워 인공 섬을 만든다는 '팜 주메이라'에선 고급 아파트와 빌라들이 올라가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두바이 경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는 건설 경기는 문제가 없는 듯했다.

그러나 다운타운을 빠져나가면 얘기는 달라졌다. 외곽단지에 짓는 주택 공사 현장에선 멈춰 서 있는 크레인을 찾기 어렵지 않았다. 우기훈 KOTRA 중동 · 아프리카 지역본부장은 "세계 금융위기와 유가 하락으로 올 들어 공사가 중단되거나 재입찰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UBS에 따르면 전체 신규 부동산 프로젝트의 60~70%에 해당하는 3000억달러 규모의 투자가 취소되거나 연기된 상태다.

◆떠나는 외국인 근로자들

외국인 건설 근로자들도 하나 둘씩 떠나고 있다. 공사가 급감하면서 일자리를 잃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주로 중동이나 인도에서 일자리를 찾아왔던 저소득층이다. 취업비자도 하루 평균 1500여건이 취소되고 있다. 현지에 3년간 체류 중인 한 주재원은 "작년보다 도로에 차들이 30%가량 줄어든 것 같다"며 "쇼핑몰 주차장도 예전엔 꽉 들어찼는데 요즘은 꽤 여유가 있다"고 전했다.

주택 임대료도 하락세다. 두바이 외곽 주거지역인 '디스커버리 가든스'의 경우 연 7만5000디르함(약 2750만원)이던 집세가 1년 새 4만디르함(1470만원)으로 떨어졌다. 다운타운의 고급 주택단지인 '메도우'도 집세가 40만디르함(1억4700만원)에서 25만디르함(9200만원)까지 급락했다. 현지 전문가들은 "그동안 집값 거품이 너무 심해서 지금은 제값을 찾아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두바이=백수전/서기열 기자 jerr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