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부문 개혁에 앞장서기 위해 인원의 10%를 줄이겠다. '

정부나 공기업에 대한 개혁 이야기만 나오면 당사자들이 내놓는 '단골 레퍼토리'다. 공기업들의 방만한 경영이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되면서 무조건 사람을 줄이고 조직을 축소하는 것이 개혁이자 혁신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는 데 따른 것이다. 이들은 경영을 합리화하겠다고 잇달아 발표하지만 국민이 느끼는 불만은 여전하다. 공공부문이 제공하는 서비스의 질이 만족스럽지 못하기 때문이다.

미국계 컨설팅회사인 액센츄어는 최근 호주 프랑스 독일 영국 싱가포르 스페인 미국 등 7개국에서 시민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삶의 질을 개선하는 데 공공부문이 얼마나 기여하고 있다고 보는냐'는 질문에 대부분 국가에서 응답자의 70% 이상이 '거의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싱가포르에서만 '기여하고 있다'고 응답한 시민이 50%를 겨우 넘었다. 공공서비스 개선을 위해 세금을 더 낼 의향이 있느냐는 물음에는 모든 나라에서 부정적 응답이 60~80%에 달했다.

이원준 액센츄어 코리아 대표는 15일 열리는 '글로벌 이노베이션 포럼 2009'에서 '공공부문의 가치중심적 혁신'이란 주제발표를 통해 이런 현상의 원인을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한다. 구체적으론 "공공부문의 혁신은 궁극적으로 가치지향적(value driven)이어야 하는데도 그렇지 못한 게 원인"이라는 것이 이 대표의 분석이다. 더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한 혁신이어야지 단순히 보여주기 위한 혁신활동에 그치면 시민들의 불만은 전혀 개선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공기업들이 늘 혁신을 위한 혁신에 그치는 이유는 민간 기업을 벤치마킹해야 한다는 잘못된 믿음에서 비롯됐다. 민간기업은 주주가치에 의해서 성과를 측정한다. 비용을 최대한 줄여 수익성을 극대화함과 동시에 성장을 꾀함으로써 주주들에게 더 많은 수익을 안겨주는 것이 민간기업의 목표다. 공공부문은 다르다. 정부와 공기업은 모두 나름대로의 임무를 가지고 있어서다.

공공부문이 비용을 줄이는 것에만 관심을 기울이면 수백억원을 들여서 다리를 놓는 것보다 1000만원짜리 모터보트를 여러대 사용하는 게 더 나을 수 있다. 하지만 다리를 건설함으로써 창출할 수 있는 여러 가치도 무시할 수 없다. 도시 미관이나 관광 인프라 조성,시민들의 편의성 등이 그것이다. 이를 위해 가끔은 비용 지출을 감수해야 한다.

그렇다고 무조건 많은 돈을 쏟아부을 수는 없는 일이다. 이 대표는 따라서 "공공부문이 제공하는 가치를 숫자로 측정하는 시스템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예를 들면 오세훈 서울시장은 한강 르네상스 사업을 활발히 벌이고 있다. 과연 이 사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성과가 어떤 것이 있는지 미리 산출하는 게 중요하다. 프랑스 파리나 호주의 시드니처럼 관광객을 더 유치한다는 목표도 있을 수 있고 도시 미관을 위한 것일 수도 있다. 서울시민의 건강지수를 높이는 것도 한강 르네상스의 중요한 목표 중 하나다. 하지만 예산은 한정돼 있어 모든 목표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 각 목표마다 가중치를 부여하고 그 비중에 따라 비용을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 대표는 최근 세계는 다극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극화시대의 특징으로 △신흥 소비세력의 등장 △세계적인 자원전쟁 △달라지는 자본흐름 △인력자원 확보 경쟁 △새로운 혁신의 필요성을 꼽았다. 각국 정부가 이런 상황에 대처하려면 지속적인 혁신이 필요하다는 게 이 대표의 주장이다. 공공부문의 경우 가치중심적인 혁신이 전제돼야 함은 물론이다.

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