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해운업체 구조조정안이 흘러나오면서 은행권과 해운업계에서 볼멘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금융위원회와 국토해양부는 선박펀드를 조성,경영난을 겪고 있는 해운업체들의 선박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자금 지원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당초 중고 선박만 사들이겠다던 금융위도 업계의 끈질긴 요구에 건조 중인 선박도 매입 대상에 포함시키는 유연성을 보였다.
여기까진 정부와 은행권,해운업체 모두 이견이 없다. 하지만 선박의 매입가격을 놓고선 의견이 크게 엇갈리고 있다.
금융위는 "선박가격이 크게 떨어진 만큼 시장가격 이상으로 사줄 수는 없다"며 '시가 매입'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매입 대상 선박을 건조 중인 선박으로 확대한 것도 업체의 모럴해저드를 불러올 수 있는데 시장가격 이상으로 배를 사주면 특혜 논란이 일 것이라는 논리다.
그러나 해운업체와 은행권의 주장은 다르다. 한 해운업계 관계자는 "건조 중인 선박의 '시가' 매입은 조선업체에만 도움이 된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예를 들어 1억달러에 발주한 케이프사이즈급 벌크선의 현재 시장가격이 5000만달러인데 정부가 이 가격에 사줘도 해운업체는 그 돈을 조선업체에 중도금으로 주고 나면 끝이어서 경영난 극복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며 "선박 발주가격의 조정 등 보다 실질적인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고 요구했다. 은행권도 워크아웃이나 퇴출 대상 해운업체의 선박을 시가로 사들이는 데 반대하고 있다. 한 은행 관계자는 "담보를 잡고 있는 선박을 선박펀드에 맡기면 수수료도 내야 하는 상황에서 헐값에 선박을 매입한다면 은행이 자체적으로 시장에서 파는 게 낫다"고 말했다.
국내 해운업은 한국을 세계 1위 조선강국으로 키워낸 조력자 역할을 해왔다. 현재 국내 해운사가 국내 조선소에 발주해 건조 중인 선박만도 160여척,100억달러어치가 넘는다. 청와대 보고에 앞서 마지막 조율작업에 들어간 정부는 "해운업계 스스로 뼈를 깎는 구조조정도 필요하지만 업계 현실을 감안한 실질적인 지원책이 절실한 시점"이라는 해운업계 원로의 충언을 되새겨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