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팀 = 45개 주채무계열에 대한 채권단의 재무구조 평가가 시작되면서 일부 대기업과 채권단이 기업 매각을 추진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달 말 재무구조 평가가 끝나고 5월 재무구조 개선 약정을 맺는 그룹이 나오면 구조조정과 인수.합병(M&A)이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정부도 관련법을 고쳐 기업 구조조정에 대한 제도적 지원에 나설 방침이어서 작년 9월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위축됐던 M&A 시장이 활기를 되찾을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최근 경기가 바닥을 벗어날 조짐을 보이고 있어 정부와 업계의 구조조정 의지가 약화되면서 M&A가 지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 10여개 대기업 '주의보'
12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주채권은행은 이달 말까지 45개 주채무 계열에 대한 재무구조 평가를 시행해 불합격한 계열을 중심으로 5월 말까지 재무 구조개선 약정을 체결하고 정기적으로 약정 이행상황을 점검할 예정이다.

채권은행들은 이번 심사에서 부채비율과 이자보상배율, 총자산회전율, 매출액영업이익률 등 4가지를 평가하되 부채비율을 가장 중요한 잣대로 삼기로 했다.

은행들은 부채비율 기준에 따라 이자보상배율, 총자산회전율, 매출액영업이익률 등의 3가지 기준의 합격점을 차등화해 점수를 매긴다.

3가지 요소의 비중은 이자보상배율(50%), 매출액영업이익률(25%), 총자산회전율(25%) 등으로 총점 100점이다.

부채비율 기준에 따른 합격점 기준은 ▲300~500% 80점 ▲250~300%는 70점 ▲200~250%는 60점 ▲150~200%는 50점 ▲200~250%는 50점 ▲150% 이하는 40점을 합격점으로 정했다.

예컨대 부채비율이 300% 이상인 대기업은 3 개 항목의 종합점수를 80점 이상 받아야 합격할 수 있지만 부채비율이 150% 미만인 곳은 40점만 받아도 합격할 수 있다.

채권단이 작년 9월 말 기준 재무제표를 갖고 지난 2월 약식 평가를 했을 때 5~6개 그룹이 불합격 판정을 받았으나 연간 결산 실적으로 정식 평가를 하면 채권단과 재무구조 개선 약정을 맺는 그룹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일단 부채비율이 500%를 넘는 곳은 재무구조개선 약정을 맺어야 하며 주력 계열사가 영업손실을 낸 곳도 좋은 점수를 받기 어렵다.

공정거래위원회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기준(금융계열 제외)으로 부채비율이 500%를 웃도는 곳은 대우조선해양, GM대우 등이다.

이외 현대중공업그룹, 대한전선그룹, 동양그룹, 한진그룹, 동부그룹, 코오롱그룹, 두산그룹, STX그룹 등도 200%를 웃돈다.

감사보고서 등에 따르면 유진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하이마트와 유진기업의 부채비율도 260~360% 수준에 달한다.

또 하이닉스반도체는 작년 연간 2조 원 수준의 영업손실을 냈다.

◇ M&A 회오리 불 듯
다음 달 은행과 재무구조 개선 약정을 체결하는 기업집단은 계열사 매각 등을 추진해야 한다.

채권단의 출자기업 지분매각 작업도 속도를 낼 것으로 보여 다음 달부터 기업 M&A 바람이 거세게 불 것으로 예상된다.

하이닉스반도체의 채권단은 자금조달을 통한 재무개선 작업과 매각 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하이닉스 채권단은 15일까지 7천억 원 증자와 자산매각 등을 통한 1조2천억 원의 자금 조달 안을 서면 결의 방식으로 확정할 예정이며 매각주간사의 실사 결과를 바탕으로 이달 중 구체적인 지분 매각 시기와 방법 등을 조율할 계획이다.

옛 사주 책임론과 대우조선 매각 등으로 근 3년째 매각작업을 진행하지 못한 현대건설 채권단은 원활한 매각을 위해 매각제한 지분을 조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채권단의 현대건설 지분 매각 규모는 50%+1주로 3조6천억 원을 넘지만 매각제한 지분율을 하이닉스 수준인 37% 정도로 조정하면 1조원 정도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채권단 관계자는 "하이닉스는 안정적인 유동성 확보 노력과 M&A 작업을 동시에 추진하 고 있어 연내 매각이 완료될 수 있을 것"이라며 "대형 매물인 하이닉스와 매각 시기가 겹칠 수 있는 현대건설은 원활한 매각을 위하여 매각제한 지분 규모를 줄이는 것을 논의하고 있으며 주요 은행들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주채무계열 5위인 금호아시아나그룹은 금호생명 매각과 함께 서울고속도로 등 보유 자산의 지분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작년 시장 상황 악화로 자산감축을 통 해 4조5천740억 원의 유동성을 확보하기로 했던 계획이 제대로 이행되지 못하면서 무리한 M&A로 풋백옵션 등에 발목이 잡힌 대우건설의 재매각 가능성도 도마위에 오르고 있다.

7위인 두산그룹 역시 작년 12월 테크팩, 올해 1월 주류사업 부문을 매각한 데 이어 방위사업 부문인 두산DST 등의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두산인프라코어의 밥캣 인수 등으로 51억 달러가 투입되면서 유동성 확보가 지상 과제가 됐기 때문이다.

동부그룹은 동부하이텍의 자구계획 이행을 돕기 위해 100% 자회사인 동부메탈의 매각을 추진 중이며 유진그룹은 올해 레미콘사업장 등을 매각한 뒤 장기적으로 유진투자증권의 잔여 지분과 경영권 매각, 하이마트의 상장 등도 추진할 계획이다.

대한전선은 올해 대한ST, 트라이, 한국렌탈 등의 자회사를 매각해 총 3천억 원 정도의 자금을 마련하는 것을 목표를 하고 있다.

주채무계열은 아니지만 오비맥주의 본입찰이 10일 실시된 데 이어 현대종합상사와 예한울저축은행의 본입찰이 다음 달 6일과 7일 예정돼 있어 다음 달 본격적인 M&A 바람이 불어닥칠 가능성이 있다.

◇ 정부 지원 강화..구조조정 의지 약화될 수도
정부는 4월 임시국회에서 관련법을 고쳐 기업 구조조정에 대한 제도적 지원 에 나서기로 했다.

정부는 자산 5조 원 이상의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이 만든 사모펀드(PEF)가 기업을 인수할 때 의결권 행사를 15%로 제한하는 현행 규정을 5년간 적용받지 않도록 할 계획이다.

일반지주회사에 소속된 PEF가 기업을 인수할 때 상장사 지분은 20%, 비상장사 지분은 40% 이상을 갖도록 한 규정을 없애기로 했다.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는 "PEF를 통한 기업 M&A에 대한 규제를 완화해 구조조정을 활성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세제 지원도 추진되고 있다.

정부는 기업이 금융부채를 상환하기 위해 보유 자산을 매각할 때 법인세와 양도소득세를 3년 거치, 3년 분할 납부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대주주가 부채 상환 목적으로 기업에 자산을 증여하면 법인세를 감면해주기로 했다.

전문가들은 최근 경기가 호전될 기미를 보이면서 정부나 채권단, 대기업의 구조조정 의지가 약화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기업 주가의 추가 상승을 기다리면서 M&A 작업도 지지부진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신영증권 김세중 투자전략팀장은 "최근 주가도 오르고 상황이 호전되는 것으로 보이는데 구조조정이 가능할지 의심스럽다"며 "기업들은 버티면 상황이 나아질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투자증권 김학균 수석연구원도 "각국에서는 지금 구조조정을 하면 경기가 회복됐을 때 다른 나라만 좋아진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구조조정은 형식적인 데 머물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harris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