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7~18일 미국 메릴랜드주 로렐.V자형 책상에 앉은 헤지펀드 매니저,교수,스위스 최대 은행 UBS 임원 등은 이틀 동안 치열한 전쟁을 벌였다. 그들 뒤는 각종 경제통계를 표시하는 대형 모니터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미군 장교들과 정보 당국자들은 참가자들의 전술과 전투를 꼼꼼히 관찰하고 기록했다. 마지막 전투가 끝나자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다. 최종 승자는 중국이었다.

미국 정치전문지인 폴리티코는 펜타곤(미국 국방부)이 존스홉킨스대 응용물리연구소 산하의 전쟁분석연구소와 함께 이 같은 첫 가상 경제전쟁(Economic War Game)을 실시했다고 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색 참가자들이 벌인 컴퓨터 모의전쟁은 총 · 포탄,군사전략가들이 등장하지 않는 경제 워게임이었다. 사상 최초의 이번 가상 경제전쟁은 미국 러시아 중국 동아시아 그 외 국가 등 5개 팀으로 나눠 이뤄졌다.

북한 붕괴를 비롯해 △러시아의 천연가스 국제시세 조작 △중국과 대만 간 긴장 고조 등 일련의 세계적인 혼란 속에서 주요 경제국 사이의 힘의 균형을 무너뜨릴 수 있는 시나리오를 가정했다. 글로벌 경제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어떤 국가들이 서로 자금을 빌려주고,각국은 다른 국가들을 개입시키려 무슨 전략을 취하는지,어느 국가가 북한을 그냥 붕괴하도록 내버려두는지 등이 주요 변수였다.

워게임 결과 미국과 러시아는 너무 많은 견제를 하는 바람에 서로 큰 피해를 입었다. 미국은 세계경제 최강국을 유지하다 금융시장에서 러시아와의 충돌 탓에 갈수록 지위가 약해졌다. 중국은 워게임 전 과정에 걸쳐 경제적 지위를 강화시켜 나갔다. 미국과 러시아가 싸우는 동안 중국이 결국 어부지리를 차지한 형국이었다.

사모펀드 전문가인 폴 브라켄 예일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워게임 후 "미국은 경제 제재와 총으로 싸우는 전쟁을 통합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일례로 미국이 군사적으로는 해군을 동원해 이란을 봉쇄하고 경제제재 조치로 경제전쟁을 수행하고 있지만 두 가지 전략 간 조정이 충분치 않다는 것이다.

브라켄 교수는 또 "중국이 달러 가치가 떨어지면 자신들도 손해를 보기 때문에 보유 중인 달러를 결코 투매하지 않을 것이라는 가정에 의문이 생겼다"며 "중국은 달러 보유와 매도 중간의 대안도 취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세계 최대 미국 국채 보유국인 중국이 최근 달러화 기축통화 문제를 제기하면서 미국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까지 나서 이를 방어하느라 진땀을 뺀 적이 있다.

참가자들은 이번 가상 경제전쟁이 놀랍게도 실제와 똑같았다며 전쟁의 성격이 바뀌고 있다는 예를 보여준 것이라고 전했다. 참가자 중에선 "군이 왜 글로벌 자본의 흐름까지 챙겨야 하느냐"는 질문도 나왔다. 이에 대해 펜타곤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전개되면서 영국이나 발칸반도에 폭동이 발생하고 일부 국가들은 존립 기반마저 붕괴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폴리티코는 이번 워게임이 9 · 11 테러 이후 미국에 대한 위협을 펜타곤이 일반적인 전쟁과 전혀 다른 차원에서 생각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비밀사안은 아니었으나 비공개였다고 전했다.

워싱턴=김홍열 특파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