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 직후 아르헨티나의 경제학자 프레비시(Prebish)는 세계를 산업화를 이룩한 '중심부(center)'와 그렇지 못한 '주변부(periphery)'로 나누고 중심부와 주변부 간의 무역거래 동향을 조사했다.

그는 중심부는 주변부에 공산품을 수출하고 주변부는 중심부에 농산물과 자원을 수출하는데 공산품 거래가격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추세적으로 상승하는 데 반해 농산물과 자원의 가격은 단기적으로는 불안하지만 추세적으로 같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프레비시는 이러한 구조의 국제무역이 지속되면 주변부의 경제적 잉여는 중심부로 빨려나갈 것이기 때문에 주변부 국가들은 자신들의 산업화에 필요한 자본을 결코 축적하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주변부 국가들이 중심부와의 교역을 줄이면서 하루빨리 산업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남미의 여러 나라들은 그의 권고를 받아들여 선진국들과 교역을 확대하는 '수출주도형' 성장을 외면하고 '수입대체형' 산업화를 개발전략으로 채택했다. 중심부와의 교역을 줄이려면 수입으로 조달하던 공산품을 스스로 생산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장 효율적은 산업화 전략은 이미 산업화에 성공한 나라들의 경험으로부터 배우는 것이다. 선진국들과의 교역은 아주 유용한 학습기회를 제공하는데 중심부와의 교역을 줄이면 이 기회를 놓친다. 또 수입대체화는 국내 시장만을 대상으로 삼기 때문에 '규모의 경제' 실현을 제약한다. 생산자가 세계 시장의 반응에서 차단돼 제품 개선과 개발 방향에 대한 올바른 신호를 받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무엇보다도 농산물과 자원의 내용은 시간이 흘러도 그대로이지만 신기술 개발과 더 많은 노동 투입으로 성능이 좋아지는 공산품은 값이 오를 수밖에 없다. 특히 프레비시는 주변부 국가가 수출주도형 산업화에 착수하면 주변부 역시 공산품을 수출하게 됨을 간과했다. 그의 처방이 잘못되었음은 오늘날 남미 국가들의 파탄난 경제가 웅변해주고 있다.

오늘날 중국 인도,그리고 브라질 등 초거대 국가들이 산업화에 돌입하면서 중심부와 주변부의 그림은 프레비시 시대의 그것과는 판이하게 바뀌고 있다. 거대 인구의 산업활동 확대와 이에 따른 소득 증가는 자원 수요와 곡물 수요를 폭증시켰다. 자원가격 폭등의 시작은 1970년대 초 중동전쟁 직후 석유파동기의 유가였지만 다른 자원가격도 뒤따를 조짐이다.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곡물 수요는 1970~1990년 사이 20년 동안 4배로 늘어났다. 식생활 개선으로 사료용 곡물 수요가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중국 등 거대국의 개인소득 상승이 불러올 수요 증대는 이에 비할 바가 아니다.

지금의 금융위기가 회복되면 전 세계는 조만간 자원가격과 곡물가격의 폭등이라고 하는 역프레비시적 쓰나미에 말려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