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타고 대도시 변두리나 수도권 외곽으로 빠지면 노인병원이 부쩍 많이 들어선 것을 알 수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해 건강보험 총 진료비(공단급여비+본인부담금) 35조366억원 가운데 65세 이상 노인의 진료비가 10조4904억원으로 29.9%의 비중을 차지했다. 2003년의 21.3%에 비하면 5년 만에 8.6%포인트 상승한 것이다. 이에 따라 노인요양병원도 작년 말 현재 690개소,7만6608병상으로 전년보다 99개소(16.8%),1만262병상(15.5%)이나 증가했다.

2018년부터 고령사회(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14% 이상)에 접어들기 때문에 하루 빨리 노인의료시설을 확충해야 한다는 게 당위론이다. 그러나 최근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는 노인병원이 질 낮은 서비스로 돈만 챙긴다는 비판적 보도가 잇따라 나와 노인환자를 둔 가족들의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노인의료시설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알려면 우선 복잡한 용어부터 이해해야 한다. 흔히 '노인요양병원'이라 불리는 의료기관의 실제 법적 용어는 그냥 '요양병원'이다. 의료법에 규정된 요양병원은 의사 또는 한의사가 의료를 행하는 곳으로 요양환자 30인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의료서비스 제공을 목적으로 개설된 의료기관이다. 연평균 하루 입원환자 40명당 의사 1명과 간호사 역시 연평균 하루 입원환자 6명마다 1명을 둬야 한다. 일반병원과 달리 의사 및 간호사의 법정 배치기준이 완화돼 있고 사회복지사나 물리치료사를 추가 배치토록 한 게 특징이다. 요양병원은 본래 암 교통사고 뇌졸중 심장병 등 급성기 치료를 마치고 요양하려는 사람을 위한 의료기관이므로 노인 전용 병원은 아닌 셈이다.

노인전문병원은 1999년에 개정된 노인복지법에 의해 의사가 아닌 노인복지법인이 설립할 수 있는 노인복지시설로 의료법상으로는 요양병원과 거의 비슷한 기준을 적용받는다. 유료 서비스를 전제로 설립됐으나 간판에 '노인전문병원'이라 명시해야 하는 것 말고는 큰 차이가 없다. 흔히 노인병원하면 (노인)요양병원과 노인전문병원을 통틀어 일컫는다.

이에 반해 일반적으로 '요양원'으로 불려지는 요양시설은 의료서비스보다는 노인 수발 제공을 목적으로 한다. 지난해 7월부터 시행된 장기요양보험에 따라 1~2등급 장애로 판명된 노인은 노인복지법 및 시 · 군 · 구 규정에 따라 장기요양기관으로 지정된 곳(현재 1728개소)을 이용할 수 있다. 요양시설 또는 장기요양기관은 간호사나 사회복지사 등 의사가 아니어도 설립할 수 있다. 따라서 의료서비스는 요양병원이나 노인전문병원에 비해 떨어질수밖에 없다.

이처럼 복잡하고 혼재된 개념들은 그만큼 노인의료가 일관된 복지정책에 의해 추진돼오기보다는 그때 그때 필요성에 의해 땜질돼 왔고 특히 건강보험 예산은 절감하되 국민에게 선심을 썼다는 이미지를 주고자하는 방향으로 이뤄져왔음을 반영한다. 적은 돈을 들여 많은 노인 의료 수요를 감당하다보니 여기저기서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

무엇보다 요양병원의 과당경쟁과 서비스질의 하향이 문제다. 모 요양병원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일당수가제'가 시행되면서 작업치료나 물리치료의 횟수를 줄일수록,관련 인력을 덜 둘수록,저가약을 쓸수록 병원으로서는 더 많은 이익을 낼 수 있게 됐다"며 "사정이 이렇다보니 제공하는 의료서비스의 질이 부실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일당수가제란 요양병원 입원료를 환자의 기능 상태와 그에 맞는 의료서비스 수준에 따라 하루 일정 금액으로 책정한 제도로 치료비의 추가 청구나 비보험 치료에 제약이 많다. 그는 또 "생존을 위한 병원들의 환자 유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통상 월 50만원의 본인부담금을 절반 가까이 할인해 주거나 아예 면제해 주는 곳이 서울 동북부 지역의 경우 80%에 육박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요양병원들이 건강보험공단에서 더 많은 돈을 타기 위해 의사 및 간호사의 인력 상황을 허위 신고하는 경우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 1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568개 요양병원을 방문해 현장 확인한 결과 절반에 가까운 274개 병원(48.2%)이 부실신고한 것으로 드러나 119억원의 요양급여비를 환수했다.


따라서 이런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선 "시설과 인력기준이 미달되는 요양병원들에 대한 수가를 삭감하고 대신 질적으로 우수한 곳은 수가를 보전해줄 필요가 있다"는 게 대한요양병원협회(회장 박인수)의 입장이다. 물론 현재도 병상수 대비 의사수 간호인력수를 각각 1~9등급으로 분류해 인력이 충분한 곳은 일정액을 가산하고 그렇지 않은 곳은 삭감하는 차등수가제를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등급별 차등 정도가 심하지 않아 적정 의료인 확보를 위한 유인책으로는 충분치 않은 실정이다. 더욱이 요양병원은 높은 임대료를 피해 서울 외곽이나 비도시 지역에 위치한 곳이 많아 의료인들이 근무를 꺼리고 있다. 특히 간호 인력의 경우 구인난이 발생해 간호사는 월 160만원의 임금이 210만원 선으로,간호조무사는 120만원에서 150만원으로 오르는 등 품귀현상을 빚고 있다. 노인성 질환 중에 신경과 · 정신과 질환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요양병원에 재직하는 해당 전문의는 전체 전문의 1300여명 중 각각 141명(10%),28명(2%)에 불과한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이에 따라 병상수 대신 입원환자를 기준으로 한 새로운 차등수가제를 보건당국과 요양병원협회가 협의 중이다. 특히 의사 간호사 외에도 약사 임상병리사 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 방사선사 의무기록사 사회복지사 등 보조인력도 중요하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인력 기준 마련과 이에 따른 차등수가제 적용도 다뤄질 전망이다.

노인장기요양기관도 문제가 적지 않다. 요양기관에 입소할 자격은 종일 침대에 누워있고 스스로 움직일 수 없거나(1등급), 휠체어를 이용하지만 앉은 자세를 유지할 수 없는 경우(2등급)인데 이처럼 병세가 중증인 사람에게 간병만 필요하고 의료서비스는 제공할 필요없다는 발상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더구나 장기요양보험은 모든 건강보험 가입자가 건강보험료의 4.05%를 갹출해 만든 재원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 정부는 건강보험재정이나 의료예산의 부족을 탓하지만 비효율적이고 낭비적인 지출만 줄여도 질적 개선을 이룰 여지가 많다는 비판이다.

노인전문병원은 2006년 84곳에서 2007년 72곳으로 줄었으며 지난해에도 정체 또는 감소세를 보였을 것으로 추산된다. 설립 요건이 다소 까다로워 신규진입이 어려운 데다 요양병원 간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노인전문병원은 요양병원이 받을 수 없는 치매나 알코올 중독 환자를 수용할 수 있기 때문에 보다 활성화될 필요가 있다.

보건복지부가 추계한 요양병원의 적정 병상수는 4만개이다. 반면 지난해 말 기준 요양병원의 병상수는 7만6608병상이다. 이를 두고 병상수가 우후죽순처럼 늘어 과포화됐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 모 노인전문병원 관계자는 "서울 외곽의 요양시설은 입소를 희망하는 최소 200명~300명의 대기자가 있는 실정이고 이들은 주로 경제력이 약하면서 맞벌이 하는 가정"이라며 "2026년이면 5명 중 1명이 노인이고 이들 중 15%가량(총150만명)은 장기요양치료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요양병원의 병상수 증가가 과도하다는 것은 단견"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복잡한 노인의료체계를 단순하게 만들고 질환 상태에 따라 최적의 서비스를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제공하는 방법을 정부와 의료계가 찾아나서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종호 기자 rumb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