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인터뷰] WBC 준우승 이끈 김인식 감독의 위기돌파 해법
올해 스포츠가 없었다면 우리들의 삶은 얼마나 팍팍했을까. 다행히 야구 대표팀의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준우승,김연아의 세계피겨선수권대회 우승,축구 대표팀의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 예선 북한전 승리 등 굵직한 승전보가 잇따르면서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특히 2주 전 막을 내린 WBC의 여운은 아직도 가시지 않은 채 온 국민에게 용기 희망 자신감 등 금액으로 환산할 수 없는 '에너지'를 불어넣고 있다. 물론 'WBC 드라마'의 총 연출자는 '국민 감독'으로 불리는 김인식 감독(62).'나라가 있고 야구가 있다'는 '야구 애국론'과 선수들에게 믿고 맡기는 '김인식 리더십'은 위기 상황에서 정부가 새겨야 할 위기 수습의 모범 답안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김 감독을 지난 2일 대전 한밭야구장에서 만났다.


◆WBC가 끝난 뒤 축하 메시지가 쏟아졌을 텐데 가장 기억에 남는 메시지는.

"셀 수 없이 많은 분들이 연락했다. 구단이나 지인들은 물론 야구 후배인 박찬호,이승엽 선수 등도 전화를 줬다. 특히 박찬호 선수는 안부를 물으면서 미국 메이저리그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제5선발로 확정됐다는 기쁜 소식까지 전해 줬다. '올 시즌에 잘할 것 같다,기대한다'고 답해 줬다. "

◆베네수엘라와 준결승전을 앞두고 밝힌'위대한 도전'이 화두가 되고 있다.

"한국 야구를 얕보는 미국이나 남미,일본한테 본때를 보여 주고 싶었다. 그래서 당당하게 도전하겠다고 말한 것이다. 앞으로도 도전은 계속된다. 국가 대표팀은 다음에 열릴 제3회 WBC에서 최고가 되고 올림픽에서 정상을 지키기 위해 계속 나아갈 것이다. 사실 인간은 마지막까지 도전하다가 없어지는 존재 아니지 않나. 삶 자체가 도전의 연속이다. "

[월요인터뷰] WBC 준우승 이끈 김인식 감독의 위기돌파 해법
◆모래알 전력으로 철옹성을 잇따라 무너뜨렸다. '김인식 리더십'은 뭔가.

"뭐,특별한 건 없다. 믿음과 신뢰가 아닌가 싶다. 직장에서의 상사와 부하 관계도 똑같다. 아랫사람이 날마다 완벽하게 일을 해 내지는 못한다. 이럴 때 꾸중하고 책임을 묻는 건 옳지 않다. 일을 하다가 다소 실수가 있어도 안심하고 분발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실수할 때마다 혼내면 상사 앞에서만 일하는 체하고 뒤돌아서면 똑같은 실수가 반복될 수 있다. 야구에서도 실수를 용납하지 않으면 선수가 주눅 들게 마련이다. 수비수의 경우 공을 놓치면 교체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또 다른 실수를 부추긴다. 서로 믿고 의지해야 더 큰 결집력이 생기고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든다. 경제도 마찬가지다. WBC나 김연아 선수의 피겨 대회 때 온 국민이 응원해 줬던 그 마음으로 뭉치면 불가능은 없다. 경제 위기도 극복해 내고 재도약의 발판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

◆적절한 타이밍에 선수를 바꾸는 용병술이 뛰어나다는 평가다.

"야구에서는 투수의 역할이 중요하다. 상대 공격수를 최전선에서 막는 게 투수이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맥을 끊는 것도 투수의 몫이다. 투수 교체를 적절하게 하면 상대방의 힘을 뺄 수 있다. 물론 변수가 많다. 순간순간 판단할 일이 많다는 얘기다. 때로는 경험이나 영감에 따라 수비수의 위치를 바꾸기도 하고 타자도 교체한다. 평소 선수들의 컨디션을 잘 알아 두는 것도 필수다. "

◆준우승 후 청와대 만찬에 초대받았는데.

"일부 선수들의 군 문제 해결 필요성을 높은 데 전달했다. 대표팀 전체 28명 중 4명이 군 복무를 마치지 않은 상태다. 메이저리거 추신수는 (입대 후 공백으로) 선수 생명에 지장이 있지 않을까 우려된다. 물론 전체적인 관점에서 봐야 하겠지만 (군 면제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도 필요한 것 같다. 그런 점을 전달했다. "
[월요인터뷰] WBC 준우승 이끈 김인식 감독의 위기돌파 해법

◆대표팀 감독직 수락에 우여곡절이 많았다는데 뒷얘기 좀 해 달라.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부터 2006년 제1회 WBC까지 국가 대표 감독을 맡은 뒤 앞으로 더는 못 맡겠다고 KBO(한국야구위원회)에 통보했다. 그런데 이번 대회를 앞두고 후배인 하일성 사무총장이 감독 직을 맡아 달라며 40년 만에 처음 부탁을 해 왔다. 우연히 한 식당에서 만난 하 총장이 내가 볼 때마다 다른 테이블에서 위스키를 맥주 잔에 따라서 벌컥 마시더라.나중에야 내가 볼 때만 들이켰다는 사실을 알았다(웃음).(대전 오류동의) 동네 아파트 주민들도 '감독님,(WBC에서) 잘해 주세요'라고 얘기하고 하 총장은 대전에 와서 아무 말 없이 죽치고 앉아 있어 결국 감독 직을 승낙했다. WBC가 끝나고 하 총장이 '고맙다'는 말만 하더라(웃음)."

◆김 감독은 속상한 일이 있어도 겉으론 늘 태연한 모습이다. 그런 의미에서 경제 불황으로 직장에서 내몰리는 신세이지만 가족에겐 쉽게 내색하지 못하는 '아버지 상'으로 비쳐지는데.

"다들 경제적으로 힘든 게 사실이다. 특히 아버지들의 어깨가 무겁다. 그렇다고 가정에서 내색할 수 없다. 감독도 속이 탈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렇다고 대놓고 화를 내거나 스트레스를 풀 수도 없다. 어렵더라도 정신적으로 재무장해 헤쳐 나가야 한다. "

◆한화가 올 시즌 중위권도 힘들다는데.


"중위권이면 굉장히 잘 봐 준 거다. '2강5중1약'에서 1약이 한화라는 평가도 있다. 해 봐야 알겠지만 전력이 약해진 건 사실이다. 젊은 층이 빨리 자리를 잡고 세대 교체 과정에서 노장들이 잘 거들어 줘야 한다. 투수는 유현진 김혁민 유원상 등 어느 정도 교체가 이뤄졌다. 올해 목표는 4강 진출이다. 그런데 '잘해야지' 하는 마음이 자꾸 앞선다. 가을 잔치에 꼭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

◆은퇴 후 계획은.

"아직 생각해 본 적 없다. 지금 같아서는 야구를 막 시작하는 유소년들을 옆에서 지켜보며 가르치고 싶다. 어린이 야구가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전용 야구장 건립도 중요하지만 선수들이 운동과 더불어 공부하는 문화를 정착시키는 게 시급하다. 운동 선수들도 수업 시간에 빠지지 않고 친구들과 잘 어울려야 더 큰 선수로 성장할 수 있다. 운동만 하면 한계가 곧 드러날 수밖에 없다. "

글=김진수/사진=정동헌 기자 tru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