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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경데스크] 딜레마에 빠진 구조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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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근석 산업부 차장 ygs@hankyung.com
    산업기자가 쓰기 싫은 기사 중 하나는 담당 기업들의 인위적 구조조정 소식일 게다. 마지막 결단을 하게 된 최고경영자(CEO)의 고뇌와 벼랑 끝에 몰린 구성원들의 고통,절망을 좁은 지면 안에 담아내기 쉽지 않아서다.

    칼바람이 몰아친 10여년 전 외환위기 때 기자는 한라 대우그룹 등 많은 대기업의 몰락을 현장에서 지켜보면서 머리로만 기사를 쓰지 말고 가슴으로도 풀어가자는 생각을 했었다.

    지난해 9월 미국 투자금융회사 리먼브러더스 파산 이후 6개월여가 흘렀지만 실물 경제현장은 여전히 꽁꽁 얼어붙어 있다. 생산성 혁신의 대명사로 여겨져 온 일본 도요타와 소니마저 감원과 일부 공장 폐쇄라는 극단의 카드를 꺼내드는 등 글로벌 경쟁기업들은 장기 불황을 헤쳐갈 구조 재편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하지만 국내 산업현장에선 구조조정이 잠복해 있는 미풍(微風)에 불과하다. 자동차,LCD(액정표시장치),휴대폰,TV 등 한국 주력 산업군의 글로벌 시장 점유율은 환율효과에 힘입어 되레 높아지고 남용 LG전자 부회장 같은 이들은 "안주하지 말자"며 환율효과 '경계론'을 설파한다.

    일부 CEO들이 사석에서 고민과 속내를 내비치고 있지만 무언가에 짓눌려 인위적 구조조정에 나설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다. 몸집을 가볍게 하고 선택과 집중을 통해 경쟁력을 회복한 글로벌 기업들의 역습을 우려할 수밖에 없다. 경총 관계자는 "외환위기 때는 기업들이 무모할 정도로 과감했다면 지금은 무기력할 정도로 손을 놓고 있는 듯하다"고 진단했다.

    며칠 전 굴지의 대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지인으로부터 '권고사직' 통보를 받았다는 전화가 걸려 왔다. 그는 "일단 버텨봐야지 별 수 있겠느냐"고 했지만 전화기 너머로 구조조정의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40대 후반 월급쟁이의 그늘진 얼굴이 확 다가왔다.

    국내 대기업들은 올 들어 임금 삭감 및 반납,일자리 나누기(잡세어링)와 극한의 비용절감을 통해 위기의 파고에 맞서고 있다. 경기가 호전되지 않을 경우 이런 미봉책으로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경제위기를 맞아 벌어지는 국가 간 생존전쟁에서 한국이 '이기는 싸움'을 하고 있다고 자평했다. "여러 면에서 승지(勝地)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도 했다. 하지만 대기업들의 사정은 복잡하다. 한국경제신문이 30대 기업 CEO들을 대상으로 긴급 설문 조사한 결과 절반 이상이 '역(逆)샌드위치' 환율효과가 연내 마감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도 현대자동차 노조는 국내 공장의 생산물량을 최고 호경기 때인 2007년 수준으로 유지해야 한다며 떼를 쓸 태세다.

    전국경제인연합회도 이달 말 청와대가 30대 그룹 총수들을 초청해 갖는 민 · 관 합동대책회의를 앞두고 고심하고 있다. 정치권과 정부 국민들이 만족할 만한 투자와 고용 계획을 내놓아야 하는데 딱 부러진 묘책이 있을 리 없다.

    생존경쟁에선 무엇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기는 게임을 하는 게 차선책쯤은 된다. 문제는 경제 주체들마다 위기를 인식하는 온도와 해법에 너무 큰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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