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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EO & 매니지먼트] 인물 탐구 : 정태영 현태카드·캐피탈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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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은 괴짜·실력은 타짜·경영은 알짜…
    3천원에 사장의자도 내주는 '쿨한 CEO'
    현대카드 · 캐피탈의 신입사원들은 정태영 사장(49) 앞에만 서면 주눅이 든다. 무서워서가 아니다.

    통이 좁은 면바지에 허리 라인을 살린 잘록한 재킷을 걸치고 뿔테 안경을 쓴 정 사장을 보고 있노라면 누가 사장이고 누가 신입사원인지 헷갈릴 정도이기 때문이다.

    요즘 명동에서는 어떤 게 유행이고,강남 젊은이들의 옷차림은 어떤지에 대해서도 신입사원보다 정 사장이 더 잘 안다.

    카드업계를 대표하는 여신금융협회장을 맡을 생각이 없느냐는 질문에 "그런 자리는 제의만 받고 맡지 않는 게 쿨한 거죠"라고 답하고 어느 모임에 가서는 "돈장사 하는 사람이에요"라고 스스로를 소개하는 이 괴짜 금융인의 정체는 뭘까.

    정 사장은 국내 카드업계에서 경쟁의 틀을 바꾼 경영자로 평가받는다. 정 사장이 2003년 현대카드 사장으로 취임해 '현대카드 M'을 내놓을 때만 해도 카드사들은 어느 카드의 연회비가 싼지,어느 회사의 현금서비스 수수료율이 낮은지 등을 놓고 경쟁했다.

    그러나 정 사장은 '현대카드 M'을 선보이면서 '현대카드는 멋있고 고급스럽다'는 이미지를 전달하는 데 주력했다. 무분별한 카드 발급과 돌려막기로 인해 카드대란이 터진 마당에 더 이상 연회비와 이자율 등으로 경쟁할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

    정 사장의 전략은 대성공을 거뒀다. '현대카드 M'은 국내 단일 카드로는 가장 많은 600만명의 회원을 갖고 있다. 이후 '현대카드 O' '현대카드 H' 등 알파벳을 딴 상품을 연이어 출시하면서 일관된 브랜드 이미지를 만들어냈고 '더 블랙'을 통해 VIP카드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

    이 같은 발상의 전환은 현대카드 · 캐피탈의 사무실에서부터 시작된다. 현대카드 · 캐피탈의 회의실에는 정해진 자리가 없다. 회의 시간에 와서 그냥 앉고 싶은 자리에 앉으면 된다. 정 사장도 남는 자리에 대충 앉는다.

    정 사장은 또 매년 연말 사장실을 직원들에게 개방하고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게 한다. 장차 사장실의 주인이 되고 싶어서든,단지 친구에게 자랑하고 싶어서든 목적은 상관없다.

    대리 이하 직원은 3000원,과장 이상은 5000원을 사회복지단체에 전달할 기부금으로 내기만 하면 사장석에 앉아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이때 사장을 의식해 예의를 차리려다가는 정 사장에게 면박을 당한다. 책상 위에 다리도 올려놓고 사장이 쓰는 만년필도 집어드는 등 다양한 포즈를 잡아 보라는 것이 정 사장의 주문.1년에 한 번 앉아 보는 사장 의자에서 마음껏 거드름을 피워보라는 것이다.

    퇴근시간이 지났는 데도 상사 눈치를 보느라 괜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일도 현대카드 · 캐피탈에서는 없다. 일은 정해진 업무시간에만 하고 저녁 때는 일찍 들어가서 가족과 함께 지낼 것을 정 사장은 주문한다.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자기 일이 끝나면 그냥 퇴근이다.

    그래서 이 회사에서는 사무실에 늦게까지 남아 있어봐야 '성실하다'는 말을 듣기보다 '집안에 문제 있는 것 아니냐'는 공연한 의심을 사기가 더 쉽다.

    그렇다고 해서 현대카드 · 캐피탈을 느슨한 조직으로 보는 건 오해다. 정 사장은 취임 이래 '3대 무관용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고객 정보 보안,협력업체와의 거래 투명성,성희롱 예방 등 세 가지와 관련해 비위를 저지른 임직원은 예외 없이 파면 조치 당한다.

    지난해 4월 금융감독원 조사에서 현대카드는 불법모집인을 통해 회원을 유치한 사실이 적발됐다. 한 모집인이 자신의 친구를 동원해 카드 회원을 유치하다가 발생한 일로 회사엔 직접적인 책임이 없다고 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정 사장은 직원 2명을 면직하고 1명에 대해서는 감봉 조치를 내렸다. 경위에 상관없이 있어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난 데 대해서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 정 사장의 생각이었다.

    정 사장은 또 품위를 강조한다. 한번은 유명 영화배우가 광고 일로 회사를 찾은 적이 있었다. 영화배우가 나타나자 젊은 여직원들이 구름같이 몰려들어 사진을 찍고 사인을 받았다. 나중에 정 사장이 불같이 화를 냈다고 한다. 현대카드 · 캐피탈의 직원으로서 자존심과 품위를 지켜야 한다는 얘기였다.

    정 사장에 대해서는 마케팅과 브랜드 전략으로 성공을 거둔 금융계의 이단아라는 시각이 없지 않다. 그러나 현대카드 · 캐피탈만큼 리스크 관리라는 금융업의 기본 원칙을 철저히 지키는 회사도 없다. 현대카드는 전체 영업수익의 75%를 가맹점의 신용판매를 통해서 얻는다.

    현금서비스와 카드론 등 대출업무 비중은 25%로 카드업계 평균(40%)에 크게 못 미친다. 대출 업무가 수익성은 높지만 위험성도 크다고 판단,무리하게 영업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자금의 조달 만기와 운용 만기를 일치시키는 ALM(asset liability management)을 통해 위험을 낮추고 있다. 덕분에 금융위기 속에서도 지난해 현대카드 · 캐피탈은 사상 최대 실적을 냈다. 올 들어서도 2월까지 1762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려 지난해 동기보다 이익이 39%나 늘어났다.

    정 사장은 서울대 불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와튼스쿨에서 마케팅을 공부하다가 매사추세츠공대(MIT)로 옮겨 재무학을 전공했다. 주변 사람들은 인문학과 마케팅,재무 등 이질적인 분야를 두루 섭렵한 것이 오늘날 정 사장의 독특한 경영 방식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정경진 종로학원 회장의 장남인 정 사장은 정몽구 현대 · 기아자동차 회장의 둘째 사위이기도 하다. 정 사장의 사무실에 가면 벽에 형형색색의 카드가 걸려 있다. 그는 카드 · 캐피탈업계에서 하고 싶은 일이 많다고 했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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