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야구 대표팀 기세가 무섭다. 말 그대로 파죽지세요,천하무적이다.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얘기다.

한국 대표팀의 성공 비결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김인식 감독의 리더십이다. '믿음의 야구'로 대표되는 그의 리더십은 어떤 최고경영자(CEO)보다 빼어나다는 찬사를 받는다.

그렇지만 감독이 아무리 용빼는 재주를 가졌다고 해도 선수들이 따라오지 못하면 말짱 도루묵이다. 기회다 싶어 선수를 바꿨는데 최악의 결과를 내버리면 감독의 용병술은 지탄의 대상이 되고 만다.

결국 한국 대표팀의 선전 비결은 감독의 빼어난 리더십(leadership)과 이에 부응하는 선수들의 팔로어십(followership)이 어우러진 결과다.

기업 등 다른 조직도 마찬가지다. 위기 상황일수록 더욱 그렇다. 리더십과 팔로어십이 조화를 이룬 기업만이 슬기롭게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문제는 말처럼 쉽지 않다는 데 있다. 요즘 같은 위기 상황에서 과연 어떤 리더십과 팔로어십이 필요한 걸까. 다양한 직급을 가진 고교 선후배 4명의 방담을 통해 이에대한 답을 찾아봤다.

#1.부하를 죽이는 리더십도 있다


아무리 훌륭한 직원들이라고 해도 리더십이 엉망이면 모래사장의 진주나 마찬가지다. 상당수 부하들이 입만 열면 상사 험담을 해대는 것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이승민 차장=선배님들.한국 야구가 너무 잘해 요즘 같은 때 진짜 살맛납니다. 보면 볼수록 김인식 감독의 리더십이 빛납니다. 사실 아랫사람들은 밥 먹고 술 먹으면서 '우리 부장은 왜 김 감독처럼 못하냐'는 식으로 뒷담화를 하거든요. 부하에 대한 '믿음의 야구'는 고사하고 권위만 일방적으로 내세우는 상사가 대부분이니까요. 자기는 회사를 혼자 이끌어간다는 사명감에 빠져 있지만 거기에 따르는 희생은 부하 몫이거든요. 결단력도 없어서 늘 적기를 놓치면서 말이죠.요즘 같은 위기 상황일수록 역시 팔로어십보다는 리더십의 영향력이 더 절대적인 것 같습니다.

◆오승철 대리=동감입니다. 저희 회사의 경우 팀단위에서 수년간 진행됐던 신제품 프로젝트가 팀장이 바뀌면서 물거품이 된 적도 있어요. 팀장의 추진력이 부족하다보니 경영진으로선 불안했고,결국 프로젝트를 중단키로 한 거죠.1년 뒤 경쟁사에서 그 제품을 내놓는걸 보니 정말 미치겠더군요.

◆한선태 국장=아니 이 사람들이.무슨 힘이 있다고 부장이나 국장을 흔들어 대나. 따지고 보면 부장 국장도 팔로어(follower · 추종자)에 불과한 것 아냐.리더십을 논하려면 경영진을 거론해야지.

◆오 대리=그렇죠.하지만 저희 같은 말단들은 경영진을 접할 기회가 적어서….아무튼 그저 입만 열면 "어려우니 노력하라"고 잔소리를 해대거나 "이러다간 누가 잘릴지 몰라"라고 협박만 하는 상사들을 자주 보는데요. 이런 리더 밑에선 팔로어십이 발휘되기 힘든 것 아닙니까. 김인식 감독이 부럽다는 동료들이 많습니다.

#2.리더는 단지 꿈을 꿀 뿐이다.

리더는 꿈꾸고 예측하는 사람이다. 이순신 장군은 "불에 타지 않고,적들이 갑판에 기어오르지 못하는 전투선을 만들라"는 명령을 내렸다. 꿈 같은 이런 주문은 심복 나대용 장군에 의해 거북선으로 현실화됐다.

◆김선길 사장=다 맞는 말인데.조그만하지만 그래도 회사를 이끌다보면 못 미더운 부하들이 있더라고.리더는 달을 가리키는데 리더의 손가락만 바라보는 직원들도 상당하고.따라오려고 흉내내는 직원은 그래도 낫지.자기 일은 못하면서 월급이나 인사에 대해 뒷말이나 만들어 내고.질색인 친구들도 많아.자기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는 선수들을 데리고 있는 김인식 감독이 경영진도 부럽다네.

◆한 국장=부하 때는 리더십이 정말 중요하다고 떠들고 다녔는데.막상 리더의 역할을 하다보니 리더십도 팔로어십이 뒷받침될 때만 발휘될 수 있다는 걸 절감하곤 하지.전에 있던 조직에서는 팔로어들이 모두 리더인양 행동하는 경우도 있었지.'나 잘났다'는 거야.그러다보니 반대를 위한 반대도 많고,행동보다는 번지르르한 말만 횡행하는 이상한 조직이 돼 버리더군.뭐 WBC의 미국 대표팀같다고나 할까.

◆이 차장=그렇게 잘난 팔로어들을 잘 이끌어 조직력을 극대화하는 게 진정한 리더십 아닌가요.

◆김 사장=그렇지.하지만 요즘 같은 불황기엔 팔로어십이 정말 중요하다고 느낀다네.좀 손해본다 싶어도 책임감을 갖고 묵묵히 자기 일을 하는 부하가 정말 필요한 시점이야.최근 은행돈 빌리는 게 하늘의 별따기 아닌가. 신경이 날카로워져 팀장급 두세 명을 좀 나무랐더니 그 중 한 명이 곧바로 사표를 가져오더군.얼마나 기가 막히던지….

#3.리더십과 팔로어십은 동전의 양면

조직에 몸 담고 있는 사람은 누구나 리더인 동시에 팔로어다. 리더십과 팔로어십은 조직 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춰야 할 동전의 양면이다.

◆오 대리=얘기를 들어보니 찔리는 부분도 많네요. 저야 회사 내에서 팔로어 입장이지만 제가 데리고 있는 사원은 저를 어떻게 볼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김 사장=누구나 어떤 분야에서는 리더가 되지 않나. 그저 뒤돌아서서 투덜대거나 어떻게 하면 편하게 지낼까 궁리만 하는 사람들도 많지.그 사람들은 과연 부하들이 자기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한번 생각해 봤으면 하네.결국은 리더가 팔로어이고,팔로어가 곧 리더가 되는 '복합형' 관계가 가장 바람직한 것 아닐까.

◆한 국장=옳으신 말씀.아니 팔로어라고 해서 평생 팔로어만 해야 한다고 헌법에 나와 있나. 결국 자기도 리더가 될 것 아닌가. 리더의 잘잘못을 보면서 자신을 뒤돌아보는 게 정말 중요한 것 아냐.

◆이 차장=아무리 그렇더라도 지금 상황에선 리더십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엔 변함없습니다. 팔로어가 잘못할 경우 수정하면 그만이지만 리더가 잘못하면 회사가 없어지니까요. 지금 같은 상황에서 직원들에게 일자리를 유지토록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리더십이 있을까요.

◆김 사장=아니 경영진은 뭐 직원들 자르고 싶겠나. 그만한 아픔이 있는거지.어쨌거나 결국은 리더십과 팔로어십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점은 분명한 것 같네.김인식 감독이 기업들에도 참 많은 숙제를 안겨주는구먼.

이정호/이관우/정인설/이상은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