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소싱업체인 삼구개발 구자관 대표(66)는 요즘 달콤한 설렘과 팽팽한 긴장감을 동시에 맛보고 있다. 남들 같으면 명예교수나 겸임교수로 강단에 설 나이에 서강대 경제대학원 신입생이 된 것.대학원 설립 이래 최고령 신입생이다.

늦은 나이에 대학원 공부를 시작한 이유를 묻자 그는 "주위에서 다시 공부하라고 하면 입을 찢어놓겠다고 으름장을 놓곤 했는데 또 일을 저질렀네요"라고 말한다. 그의 엉뚱한 대답에는 사연이 있다.

구 대표는 지난해 2월 65세의 나이로 용인대 경찰행정학과를 졸업했다. 유도 실기,컴퓨터 등에서 F학점을 받는 등 힘든 과정을 거쳤다. 게다가 회사 경영하랴,한국경비협회장직 수행하랴 4년 내내 숨 돌릴 틈이 없었다. 그래도 커닝 안 하기,교수한테 학점 동냥 안 하기 등의 원칙을 정해 스스로를 닦달했다. 제일 힘들었던 건 학생들과의 관계.마흔 살 어린 상급생에게도 꼬박꼬박 선배라고 불렀다. 졸업식 때는 평생 소망하던 학위를 그렇게 받고 나니 눈물이 펑펑 흘렀다. "학력 콤플렉스는 없었어요. 다만 본사 직원 101명이 모두 대졸인데 나만 고졸이어서 직원들과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서라도 참고 버텼죠."

구 대표는 초등학교 때 월사금을 못내 졸업장을 받지 못했다. 동갑내기 사촌 넷이 나란히 교복을 입고 중학교에 갈 때 그는 아이스케키통과 구두통 메밀묵통을 메고 거리를 헤매다 천막학교에서 중학교 과정을 마쳤다. 이후 공장에 다니며 용문고(당시 강문고) 야간과정을 졸업했지만 이번에도 사촌 넷이 나란히 대학에 가는 걸 부럽게 바라볼 뿐이었다.

대신 그는 1976년 직원 2명을 데리고 청소용역을 시작했다. 10년이 지나도 매출액은 고작 8000여만원에 그쳤다. 고통이 극에 달한 어느날 유일한 재산인 소형 트럭을 몰고 한강으로 돌진했다. 그러나 다리 기둥에 부딪친 차만 대파되고 구 대표는 멀쩡했다. 살아보자고 맘을 고쳐 먹었다. 다행히 아시안게임과 서울올림픽이 열리면서 청소,건물관리 등 아웃소싱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면서 일감이 늘기 시작했다. 올해로 33년째 이 일을 하고 있는 그는 신세계그룹 SK그룹 등 500여개 사업장을 고객으로 두고 있다. 지난해 1400억원의 매출을 기록,1만5000여개 아웃소싱 회사 중 리딩컴퍼니가 됐다. 그는 이 모든 공을 8000여명의 임직원들에게 돌렸다. "나만 잘한다고 회사가 크는 건 아닙니다. 현장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땀으로 일군거죠."

그는 회사 주식 38%를 임직원들에게 나눠줬다. 회사에는 일가 친척이 한 명도 없다. 처남이 청소용품을 생산하지만 빗자루 하나 사주지 않는다. 자식들에게도 경영권을 넘겨주지 않을 생각이다. 삼구개발이 요즘 같은 불황에도 흔들리지 않는 비결이다.

구 대표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해봤어?"라고 말한 고 정주영 회장."은퇴한 친구들이 '이 나이에 뭘 하겠느냐'고 말할 때가 제일 답답합니다. 나이와 관계없이 해보면 다 되는데 두렵다고 안 하면 되는 일이 없죠." 실제로 그는 환갑이 다 돼서야 스키에 도전,요즘은 최상급 코스를 즐긴다. 최근엔 할리데이비슨 오토바이를 몰고 질주하는 실버 폭주족(?)이기도하다.

박사학위에도 도전할거냐고 넌지시 물었다. "여자가 출산의 고통 땐 남편 미투리를 내던지지만 예쁜 아이 얼굴 보면 다시 주워다 놓는다는데,가만히 있지 못하는 내 성격상 그 꼴나지 않을까 싶네요. "

최규술 기자 kyus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