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법 바람이 따스한 요즘,겨우내 미뤘던 운동을 시작하기 딱 좋은 때다.

'이제부턴 열심히 운동하겠다'는 굳은 결심이 작심삼일이 되지 않게끔 하는 묘책이 스포츠웨어부터 장만하는 것이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완벽하게 차려 입으면 집중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단순히 통풍이 잘되고 땀 흡수가 잘되면 좋은 운동복으로 인정받던 시대는 지났다. 기능성은 기본이고 패셔너블함을 더해야 비로소 대접받는다. 특히 올 봄 · 여름시즌 패션계의 화두는 '1980년대 스타일'과 '스포티즘'을 어떻게 패셔너블하게 믹스할지에 모아지고 있다. 그동안 따로 가던 스포츠 트렌드와 패션 트렌드가 모처럼 교집합을 이룬 것이다.

◆80년대 스포츠룩 vs 2009년 스포티즘룩

그렇다면 1980년대 인기를 끌었던 스포츠 룩은 어땠을까. 1980년대는 경제적 풍요를 바탕으로 여가를 중시하는 여피족이 등장했고,건강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조깅 등 스포츠가 사랑받던 때다. 이에 맞춰 기능성에 스타일이 강조된 스포츠웨어가 패션의 주요 아이템으로 급부상했다.


또 그라운드에서 뛰는 선수들을 식별하기 위해 사용하던 강렬한 원색의 '애시드 컬러'가 일반인을 위한 피트니스 복장에도 본격 적용됐다. 화려한 레오타드(위아래가 붙은 옷),러닝 수트,레그 워머,헤어밴드,손목밴드,그리고 멋진 조깅화가 당시 대표 아이템들.이런 1980년대 스타일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인물이 바로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온 몸을 화려하게 치장하고 등장한 '트랙의 패션모델' 그리피스 조이너였다.

그렇다면 1980년대에 기반을 둔 2009년 스포티즘 룩 트렌드는 어떻게 정의할까.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일상복으로 무방할 만큼의 실용성에 있다. 패션에 관심이 많은 이라면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할리우드 스타 제니퍼 로페즈가 내놓은 '제이 로'나 미국의 국민 브랜드 '아베크롬비''홀리스터' 등의 트레이닝복을 기억할 것이다. 스포츠센터에서나 어울릴 법한 옷을 입고 카페에 앉아 있는 젊은 여성들을 흔히 볼 수 있었다. 남성들도 맨유,아스널 같은 축구팀 유니폼을 청바지와 매치해 입었다.

하지만 지금의 실용성은 그때와는 다른 '세련됨'에 기반을 둔다. 트레이닝복 티가 나는 것이 아니라 라벨만 떼면 스포츠 브랜드임을 간파할 수 없을 만큼 캐주얼 스타일로 진화하고 있다. 컬러는 "네온,핫핑크,아쿠아,퍼플,옐로,그린 등을 이용한 다양한 색의 믹스&매치가 주를 이룰 것"이라는 강석권 머렐 디자인실장의 말처럼 1980년대 스타일에 오마주(경의)를 표하듯 강렬한 원색이 주를 이루고 있다.

◆실용성에 패션과 친환경을 가미

나이키는 '루프휠(Loopwheels)'이라는 빈티지 기계로 직물을 생산하는 일본의 플리스 제조업체 루프휠러와 손잡았다. 기계 한 대가 하루 12m의 직물을 생산하고 오직 8벌만 만든다는 설명은 여기선 부차적이다. 중요한 것은 나이키 '루프휠'이 세계 최고 수준의 멀티숍 '10 코르소 코모 서울'에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아디다스도 디자이너 스텔라 매카트니,제레미 스콧과 손잡고 매력적인 옷들을 선보이고 있다.

일상복으로도 손색없는 스포츠웨어가 가장 돋보일 때는 산들바람을 느끼며 자전거를 탈 때다. 스포츠 패션의 일상화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게 요트를 비롯한 리조트 룩이다. 영화 '리플리'는 리조트 룩의 교과서다. 주드 로와 기네스 펠트로는 영화 내내 리조트 룩의 모범답안을 보여준다. 프라다의 '리네아 로사' 라인,푸마의 '세일링' 라인에서도 럭셔리한 리조트 룩을 만날 수 있다.

의류 외에 가장 눈에 띌 만한 도약은 신발에서 이뤄지고 있다. 덕분에 패셔너블한 스니커즈와 구두에 밀려 자취를 감췄던 조깅화가 다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클래식한 나이키의 '코르테즈'가 급부상했고 푸마,리복의 컬러풀한 운동화들이 어필하기 시작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조깅화로 소개됐던 '뉴 발란스'나 자신의 취향대로 신발을 디자인할 수 있는 아디다스의 '마이 오리지널스',패셔너블함을 강조한 '머렐'이나 '호간'이 각광받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끝으로 '실용성'과 더불어 꼭 짚고 넘어가야 할 트렌드는 '친환경'.오가닉이나 재활용 소재 사용,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컬러 팔레트 속에서 나타나는 친환경적 감성이 올 봄 · 여름 스포츠 트렌드를 관통하고 있다.

스포츠 룩은 이제 단순히 운동복이 아니라 풍요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위한 중요한 도구로 격상되고 있다. 이번 봄에는 주말 웨어로도 손색없는 스포츠 아이템에 투자해볼 가치가 있다.

패션 칼럼니스트 kimhyeonta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