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층은 '알고 지내는' 친구집단,즉 커뮤니티로부터 떨어지는 걸 두려워한다고 한다. 은퇴 후 오랫동안 살던 삶의 터전을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직장생활이라는 공적 활동을 접은 상황에선 친목활동의 공간인 커뮤니티의 중요성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이런 커뮤니티 활동이 개인의 소일거리에 그치는 게 아니라 지역발전은 물론 재테크에까지 연결된다면 '금상첨화'가 될 것이다. 이웃나라 일본에선 일찍부터 커뮤니티를 지역경제발전과 연계한 '커뮤니티 비즈니스'로 연결시키고 있다. 최근에는 우리나라에서도 일부 지방자치단체와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커뮤니티 비즈니스를 싹틔우고 있다. '인생 2모작'을 연출할 수 있는 커뮤니티 비즈니스의 세계로 들어가보자.

◆커뮤니티 비즈니스란 무엇인가


'커뮤니티 비즈니스'란 용어는 1990년대 중반부터 일본에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국내에서도 관련 포럼이 열리고 지자체들의 일본 견학도 늘고 있다.

'커뮤니티 비즈니스'는 말 그대로 직장 은퇴자들이 지역에 커뮤니티를 만들어 지역 문제를 해결하고 더 나아가 관련 시장까지 창출하는 것을 일컫는다. 퇴직한 직장인이 직장에서 쌓은 경험이나 노하우를 사장하는 대신 개인과 지역사회 모두에 도움이 되도록 활용하자는 취지에서 나왔다. 이렇게 되면 고용문제,고령화,도심 공동화,육아,재래상가 침체,학교 급식 등 다양한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는 부수효과도 있다. 보통 커뮤니티 비즈니스는 소득을 얻지 못해 지속성이 떨어지는 자원봉사와 다를 뿐 아니라 자금력 싸움인 일반 비즈니스와도 성격을 달리한다. 고령자 취업과 지역문제 해결이란 측면에선 사회적기업과 흡사하다.

1980년대 초 이 사업을 출범시킨 영국은 현재 관련 시장을 60조원대로 키워놨다. 10년 전 영국 모델을 벤치마킹한 일본에서도 커뮤니티 비즈니스의 시장 규모가 2008년 2400억엔(약 3조7000억원)에 달한다. 2011년에는 커뮤니티 비즈니스 시장이 2조2000억엔을 돌파할 전망이다.

도쿄 근처 미타카시에선 일종의 노인카페인 '시니어 소호 보급살롱'이 성업 중이다. 1000여명의 회원들이 전화와 엽서,인터넷을 활용한 상담활동을 벌이고 있다. 컴퓨터 관련 업종에 종사하다 은퇴한 사람들이 주축이 된 이곳에선 컴퓨터를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노인을 양성하는 컴퓨터 연수사업과 인터넷을 설치하고 싶어하는 노인들을 지원하는 방문지원사업이 두 사업 축이다. 초 · 중 · 고생 대상 인터넷 교실도 운영하며 소득을 올리고 있다.

교토부 단고반도 오미야초(町) 쓰네요시 마을에 위치한 '쓰네요시 촌영(村營)백화점'도 성공적인 커뮤니티 비즈니스 사례다. 주민출자 형태로 1997년 만들어진 이 백화점은 주민들이 직접 재배한 유기 · 자연농산물을 판매하는 장터 역할을 하면서 독거노인에 대한 상품배달,제사준비 · 우편발송 등의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교토부 산간지대의 미야마에선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활용한 관광 커뮤니티 비즈니스가 활성화돼 있다. 울창한 산림지역에서 생산되는 청정 생수 '미야마명수'를 세워 자립기반을 만들었다.

이와 함께 기후현 타지미시에 있는 종업원 60명의 택시 주식회사는 지역주민들의 생활에 관련된 일이면 가리지 않고 맡아서 처리하는 '생활지원기업'이다. 택시업무는 물론 운전 대행,쇼핑 대행,성묘 동행,병원 동행,정원 정리,묘지 청소,장지 바꾸기,애완견 시중까지 뭐든지 다 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커뮤니티 비즈니스 태동

이 같은 일본의 커뮤니티 비즈니스의 장점을 벤치마킹한 '한국형 커뮤니티 비즈니스'를 만들기 위한 움직임도 활발해지고 있다.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은 박원순 변호사가 주도하는 희망제작소다. 은퇴한 시니어들을 봉사의 삶으로 전환시켜 주는 해피시니어 사업이라든지,시민들의 아이디어를 현실화시켜 내는 사회창안사업 등을 정력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를 맡고 있는 박 변호사는 "커뮤니티 비즈니스는 은퇴하는 전문직들이 사회에서 제 역할을 할 수 있게 돕는 것"이라며 "이들의 경험과 지혜를 다양한 봉사조직,비영리 단체,사회적 기업 등에 전환하면 개인으로서도 인생 후반부가 풍요로워지고 국민소득 창출 효과도 크다"고 말했다.

실제로 전남 순천시 주민들이 최근 커뮤니티 비즈니스를 출범시켰다. 순천시 연향동에서는 시 주관 평생학습교실에서 제빵기술을 배운 주부들이 '순천 여성문화회관 제과제빵동아리'를 구성,순천산 밀로 만든 빵을 판매하고 나선 것.이를 통해 지역산 밀을 소비하고,배고픈 이웃을 도우면서 동시에 소득을 내는 '1석3조'의 메커니즘을 가동하고 있는 것.단순 일회성 행사가 아니라 '순천사랑빵'이라는 브랜드를 만들어 일주일에 5번 정기적으로 빵을 만들고 있다.

김재현 커뮤니티비즈니스 연구소장은 "경제상황이 열악한 시골지역부터 커뮤니티 비즈니스가 시작되고 있다"며 "국내 도시지역에서도 은퇴 직장인들이나 자영업자들이 주축이 된 커뮤니티 비즈니스가 활성화될 조건이 성숙했다"고 말했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