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선전과 톈진,하이저우 등 세 곳에서 휴대폰을 생산하고 있는 삼성전자가 일부 모델의 생산라인을 국내로 옮겨오는 방안을 놓고 고민 중이다. 중국 위안화 강세가 지속되고 있는 반면 원화 가치는 가파른 약세를 지속,생산원가에서 중국이 한국보다 낫다고 할 수 없는 상황에까지 이르렀기 때문이다.

이 회사 무선사업부 관계자는 "일부 품목은 당장이라도 U턴이 필요하지만 경북 구미 휴대폰 공장이 풀가동 상태여서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저렴한 인건비를 겨냥해 중국 등에 진출한 의류업체들에서부터 시작된 해외 공장 U턴 행렬이 최근 에어컨과 휴대폰 등을 생산하는 대기업들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정부가 최근 수도권 규제를 완화하는 등 국내 사업환경이 개선 추세를 보이고 있는 것도 기업들의 '귀환'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는 분석이다. 해외로 빠져 나갔던 기업들의 U턴은 투자 위축으로 줄어들고 있는 일자리를 다소나마 늘리는 효과도 기대된다.

◆중국 엑소더스 시작되나

U턴의 진원지는 한국 기업들의 생산기지 이전이 집중됐던 중국이다. 중국 정부가 2,3년 전부터 외자계 기업에 대한 환경 노동 세제 등의 우대조치를 거둬들이기 시작한 데다 인건비까지 빠르게 치솟으면서 사업 여건이 예전만 못해졌기 때문이다. 최근의 환율 추이는 이런 움직임에 결정타를 가하고 있는 형국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22일 내놓은 '중국 진출기업 애로 실태조사' 보고서는 국내 기업들의 중국 내 사업환경이 얼마나 달라지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대한상의가 중국에 진출한 국내 제조 · 유통기업 1100여개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 기업의 27%가 '중국 사업의 규모를 축소하겠다'고 밝혔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원 · 위안 환율이 오르면서 중국이 갖고 있던 생산기지로서의 매력이 약해지고 있다"며 "중국 내수시장 전망도 어두워 저렴한 인건비를 노리고 진출한 기업들을 시작으로 '엑소더스'가 본격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개발연구원이 중국 칭다오,톈진,쑤저우 등에 진출한 21개 한국 기업을 대상으로 최근 실시한 설문조사도 결과가 비슷하다. 응답 기업 대부분은 중국의 사업 여건이 악화됐다는 반응을 보였으며 30%가량은 한국으로 복귀할 의사가 있다고 답했다.

◆'아메바형 생산 전략' 확산된다

환율이나 원자재 가격과 같은 대외 변수를 예측하기 힘들어지면서 기업들의 생산 전략도 달라졌다. 신속하게 환경 변화에 대응하는 단세포 동물 아메바처럼 경영 환경이 달라질 때마다 생산하는 제품의 종류를 바꾸는 '아메바형 공장'을 국내외 각 지역에 늘리고 있는 게 대표적인 사례다. 환율 급등 등의 변수가 발생하면 즉시 생산 비중을 조절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어서다.

LG전자 관계자는 "최근 PDP(플라즈마 디스플레이 패널) 업황이 악화돼 구미 생산라인을 태양광 발전용 전지 공장으로 전환했고,휴대폰이 주력인 평택 공장 일부도 LCD(액정표시장치) 제품을 시험할 수 있는 R&D(연구 · 개발) 라인으로 활용하고 있다"며 "필요에 따라 공장 용도를 바꾸는 일이 앞으로 많아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도 "반도체나 LCD 같은 부품 분야와 달리 세트(완제품) 분야는 생산 품목을 바꾸는 것이 어렵지 않다"며 "최근에는 새로운 생산시설을 만들 때부터 생산 품목 교체와 라인 이전을 염두에 둔다"고 설명했다.

◆환율 효과 사라질 때 대비해야

전문가들은 환율 효과가 사라지면 U턴 기업들이 다시 해외로 되돌아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생산시설을 아메바형으로 만들어 생산기지를 손쉽게 이전할 수 있는 대기업들은 재이탈 가능성이 더 크다. 이들을 붙들어 놓기 위해서는 투자환경이 지속적으로 개선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은경 경기개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중국으로 이전한 기업들 대부분은 높은 인건비와 잦은 노사분규,정부 규제 때문에 한국을 떠났다"며 "수도권 규제가 완화되는 등 제도적 환경은 예전보다 많이 나아졌지만 외국인 투자자에 비해 열악한 투자 혜택,높은 산업단지 임대료 등은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설명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U턴 기업에 실질적인 혜택을 부여해 한국에 완전히 정착하게 하면 '일자리 나누기'가 아닌 확대 지향적 '일자리 만들기'가 가능하다"며 "생산성을 초과하는 임금구조를 개선하고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송형석/안상미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