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미국 동부 필라델피아 중산층 거주지역에 있는 전당포 '소사이어티 힐 론'. 캐딜락을 몰고 온 29세의 젊은 남성은 다이아몬드로 장식된 '모바도 피에로' 시계를 내밀면서 2500달러를 빌려달라고 요청했지만 '롤렉스' 같은 명품 브랜드가 아니면 받을 수 없다는 대답을 들어야 했다. 한 화학업체에서 연초 해고된 그는 이전에 벌던 돈의 절반도 안 되는 임금을 받고 공항에서 비행기 청소를 하고 있는데 모기지(주택담보대출) 대출금을 갚기 위해 전당포를 찾았지만 헛걸음을 하게 된 것이다.

#2. 중국에서 철강회사를 운영하는 장모씨.요즘 급전이 필요할 때마다 전당포로 달려가 회사 운영자금을 빌린다. 은행들이 대출 문턱을 높였기 때문이다. 장씨는 "전당포에서 돈을 빌리기는 처음"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경기불황을 타고 전 세계 전당포가 성업 중이다. 미국 영국 호주 등 서방 선진국은 물론 중국에서도 '뎬당항(典當行)'으로 불리는 전당포를 찾는 고객이 크게 늘면서 신규 점포가 속속 개설되고 있다. 시계에서부터 금과 같은 귀금속과 슈퍼볼 반지는 물론 집과 공장까지 저당을 잡혀 급전을 구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미국에서는 중상류층의 전당포행이 잦아지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최근 보도했다. 2400여 회원이 있는 전국전당포연합의 데이브 아델만 회장은 전통적인 전당포 고객은 연간 약 2만9000달러 정도의 저소득 가구지만 요즘은 주가 급락에 따른 손실과 까다로워진 은행 대출,예기치 않은 정리해고 등에 직면한 중상류층에서 전당포를 찾는 일이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소사이어티 힐 론' 전당포에는 담보로 잡은 모피,다이아몬드 등이 가득하다. 이 가게는 최근 수개월 동안 수익이 40% 이상 늘었다. 로스앤젤레스의 고급 주택가인 베벌리힐스에 있는 '베벌리 대출'도 건당 5만달러 이상의 대출이 증가 추세다. VIP룸을 만드는 전당포도 생겨나고 있다. 전당포 수수료는 주마다 다르지만 통상 75달러를 빌려주고 월 15달러의 수수료를 챙긴다.

영국에선 최대 상장 전당포 회사인 하비 앤드 톰슨(H&T)이 짭짤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 1897년 첫 점포를 낸 H&T는 지난해 역대 가장 많은 16개의 새 점포를 개설,전체 점포 수가 105개로 늘어났다고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가 최근 보도했다. H&T의 존 니컬스 최고경영자(CEO)는 "회사의 거의 모든 영업 부문이 작년에 두 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중국에선 가난한 사람들을 착취하는 자본 수탈가로 지목받으면서 문화혁명 초기 금지됐던 전당포들이 화려한 부활을 하고 있다. '상하이 오리엔탈' 영업 담당 황징씨는 "우리는 (대출) 문턱이 낮고 은행보다 더 빨리 더 많은 돈을 빌려준다"고 말했다. 중국 전당포협회에 따르면 2800여개의 전당포가 운영되고 있으며,보유자산 규모는 360억위안(약 7조2000억원)에 이른다. 중국 상무부는 올해 240개의 전당포에 신규 허가를 내줬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과거 냉소적 대상이었던 전당포가 장쑤성과 저장성 등 중국의 부유한 연안도시 중소기업인들의 자금줄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화샤 전당포 관계자는 과거 저당물로는 고가 귀금속 및 전자제품,유가증권 등이 인기였지만 최근에는 아파트 등 주택과 자동차 공장설비 등의 저당이 늘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오광진 기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