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팀 = 이달 들어 국제금융시장이 경색되면서 국내 금융기관의 외화조달이 다시 어려워지고 있다.

당국은 외환시장 불안에 대응할만한 수단을 충분히 갖고 있지 않다.

한미스와프 협정이나 외환보유액 등이 안전판이 되고 있지만 당장 시장에 투입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게다가 국제 금융시장 불안은 빠른 시일 안에 진정될 가능성이 높지 않다.

세계 각국이 외환위기에 직면하고 있고 이는 국제금융시장을 계속 흔들고 있다.

◇ 조달금리 급등..차입 속속 연기
18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이달 들어 달러 조달 사정이 다시 어려워지면서 은행들이 외화 차입을 속속 연기하고 있다.

산업은행이 외화채권 발행 때 리보(런던은행간 금리)에 추가하는 가산금리는 지난달 말 5%대 초반이었지만 지난 주말 이후 5%대 중반으로 상승했다.

하나은행은 최근 자체 신용 외에 정부 보증을 통한 외화채권 발행도 검토했으나 시기적으로 상황이 여의치 않아 실제 발행에는 나서지 않았다.

우리은행이 외화 후순위채를 조기 상환하지 않는 대신 투자자들에게 금리를 더 주기로 한 점도 5%대였던 조달금리가 최근 15% 수준으로 급등하는 등 조달 여건이 악화된 점을 고려한 조치다.

이달 들어 외화자금 사정이 악화된 것은 미국의 구제금융안에 대한 실망과 유럽, 러시아 등의 금융불안, 북한 미사일 발사 가능성 등 대내외 불안요인이 겹치면서 국제금융시장에서 위험자산 기피 심리가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외자 조달 시장이 올 초 풀리는 듯하다가 최근 악화되면서 자금조달을 준비하려던 은행들이 대기하는 분위기"라며 "은행들이 투자자들의 요구로 소규모 자금조달은 지속하고 있으나 중장기 차입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3월 달러수요.

.외화유동성 압박하나
국내 상장사들의 배당이 3월에 집중돼 있고 3월 말 결산을 앞둔 일본계 금융기관이 국내 투자자금을 회수할 수 있다는 점도 외화유동성을 압박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다음 달에만 주요 대기업과 시중은행을 비롯해 12월 결산법인 126개사가 주주총회를 개최할 예정으로, 외국인 주주들이 일제히 배당금을 본국으로 회수하면 외환시장의 달러 수요가 확대될 수 있다.

다만, 지난해 상장사의 이익이 크게 줄었고 올해는 상황이 더 악화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배당 규모는 급감할 것으로 보인다.

유가증권시장에서 12월 결산법인 608개사의 `2007년 회계년도' 배당 총액은 약 14조원으로 현재 환율로 환산하면 약 100억 달러 규모에 이른다.

하지만 올해는 배당이 크게 줄 가능성이 크고 외국인 지분율도 30% 이하로 낮아진 만큼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현대증권 투자분석부 박문광 총괄팀장은 "현재 환율이 1,400원대로 높아진 상황에서는 외국인들이 배당을 받더라도 곧바로 달러로 환전하지 않고 환율이 떨어질 때까지 적절한 매수 타이밍을 기다릴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국내 은행의 엔화 차입금 약 130억 달러 가운데 3월에 만기가 도래하는 금액도 10억~ 20억 달러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정영식 수석연구원은 "외국인 배당이나 일본계 자금 회수 등 불안 요인들은 이미 외환시장에 선반영됐다고 볼 수 있다"며 "향후 외화유동성의 관건은 은행의 신규 차입이나 롤오버 여부"라고 말했다.

◇ 당국, 뾰족한 대책이 없다
더욱 걱정 스러운 것은 외환당국이 시장불안에 대응할 충분한 수단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데 있다.

지난해 10월30일 한미 통화스와프 협정 체결은 환율의 급등에 제동을 거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원.달러 환율이 무한정 치솟으면서 국가부도 사태가 발생하는 것이 아니냐는 공포가 확산됐으나 한미 스와프 협정 체결소식은 이런 패닉을 일거에 진정시켰다.

그러나 한미 통화스와프 한도 300억달러 가운데 이미 163억 달러가 소진되면서 당국은 추가로 자금을 인출하는데 부담을 느끼는 상황이다.

사용액이 300억달러에 가까워질수록 남아있는 카드가 더이상 없다는 것을 시장에 알리는 `반작용'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외환보유액이 2천억달러 가량 남아있지만 이를 당장 시장 관리에 투입할 수 없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외환보유액이 2천억 달러 아래로 내려오면 해외에서는 한국 당국의 대응능력이 상실돼 간다는 쪽으로 해석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당국이 마음놓고 사용하기가 어렵다.

한중, 한일 스와프 확대도 달러부족 사태에서는 효과를 발휘하기 어렵다.

한국은 달러화가 아닌 위안화와 엔화를 받아오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증 스와프는 아직 세부적인 논의가 좀더 필요한 상황이다.

◇ 은행 중장기 차입확대 유도
작년 12월 말 현재 은행권 전체 외화차입은 총 1천250억 달러로 여기서 정부와 한국은행이 은행에 빌려준 달러자금 260억 달러와 국내은행의 해외점포 차입 140억 달러를 뺀 순수 외화차입금 규모는 850억 달러 수준이다.

올해 만기도래하는 순수 외화차입금은 350억 달러로 이중 절반 이상인 180억 달러가 1분기에 몰려 있고 분기 말인 다음 달에는 100억 달러에 달한다.

금융당국에선 분기 말 영향으로 다음 달에 은행 외화차입 만기가 집중됐으나 올해 들어 만기연장률이 크게 개선돼 별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작년 9월 리먼브라더스 사태 이후부터 작년 말까지 해외차입 만기연장률은 50% 수준에 불과한데 비해 올해 들어 최근까지 만기연장률은 80~90% 수준으로 개선됐다는 것이다.

은행 외화차입 만기도래 금액도 올해 2분기와 3분기에 각각 60억 달러, 4분기 50억 달러로 1분기에 비해 3분의 1 수준이다.

그러나 대외 차입여건 악화로 만기도래하는 중장기 차입을 단기차입으로 막는 경우가 많아 차입구조에 불균형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지금은 2분기 이후 만기도래 차입금이 상대적으로 적은 것으로 보이지만 1분기 만기도래분의 상당 부분이 당장 2분기부터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에 따라 금융당국은 은행들이 만기도래 외화차입을 정부의 지급보증을 받아 장기로 돌리도록 유도하고 있다.

정부의 지급보증을 받으면 중장기물 차입이 그나마 수월할 것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서울=연합뉴스) harris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