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는 '역(逆) 샌드위치' 기회를 맞고 있는가. 그동안 중국의 저가 공세와 일본의 하이테크에 눌려 '샌드위치' 신세로 전락했던 한국이 최근 경제 위기로 그런 기회를 맞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샌드위치 론' 이건 '역 샌드위치 론' 이건 하등 새로운 것이 없는 이야기다. 따지고 보면 한국만 다른 나라 사이에 끼인 것이 아니다. 세계에서 기술력이 가장 강한 나라와 가장 약한 나라를 제외하고는 모두 다른 나라 사이에 끼인 처지다.

일본은 미국과 한국 사이에 끼인 처지고 한국은 일본과 중국 사이에 끼인 처지다. 그런 처지에서 산업의 경쟁력이 약해지면 '샌드위치'가 되고 강해지면 '역 샌드위치'가 되는 것이다. 산업의 경쟁력을 결정하는 요인은 무엇인가. 우선 중요한 것이 환율이다. 지금 한국이 '역 샌드위치' 상태에 있는 것은 환율 덕분이다.

2008년 초 이후 엔 · 달러 환율은 18.9%, 위안 · 달러 환율이 6.4% 떨어진 반면, 원 · 달러 환율은 48.7% 올랐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환율이 경쟁력의 바탕이 될 수 없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장기적 경쟁력은 환율이 아니라 생산성 증가에 달려 있다.

한국이 장기적으로 '역 샌드위치' 상태를 달성하고 싶으면 이번 위기를 생산성 향상의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런 일을 해야 하는 일차적 주체는 물론 기업이다. 연구 · 개발과 인력 훈련에 대한 투자를 줄이는 것은 최대한 피하고,환율 상승으로 낸 이익이 있다면 그런 투자를 늘리는 쪽에 투입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더 중요한 것은 정부의 정책이 아닌가 한다. 정부의 경기 부양책 내용에 따라 생산성 증가가 큰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경기 부양책이 새로운 기술,산업을 발전시키고 자원 다소비형 경제체질을 바꾸는 쪽으로 간다면 생산성 향상에 도움이 된다. 제조업에 비해 서비스산업의 생산성 증가가 부진한 만큼,금융 교육 법률 의료 같은 근대적 서비스산업을 발전시키는 것이 경제 전체의 생산성 증가에 기여할 것이다.

그리고 '사람'을 보존하는 것도 중요하다. 위기를 계기로 빈곤층이 양산되어 '인적 자본'이 영구 마모된다면 장기적으로 경제 전체의 생산성 증가에 걸림돌이 될 것이다.

정부가 이런 것을 모르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실제로 경기 부양책은 이런 것들을 포함하고 있는 것 같다. 문제는 역점을 어디에 두는가다. 지금까지 항상 그래왔듯이 수많은 사업 중에 시행되는 것은 결국 역점을 두는 사업일 것이다. 불행하게도 정부의 역점은 이런 것보다는 경인운하나 4대강 사업 같은 토목공사에 가 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물론 다 하면 될 것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될 수는 없다. 정부의 부양책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국제수지로부터 오는 제약이 있다. 지금의 외환시장 동향으로 볼 때 올해나 내년에 경상수지가 적자가 되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제약이 있는 것이다. 재정 상태로부터 오는 제약도 있다.

흔히 한국의 재정은 다른 나라에 비해 경기 부양의 여유가 있다고 하지만,그것은 기준을 어떻게 잡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잘못하면 재정의 건전성에 대한 의구심 때문에 외자가 급격히 유출되는 사태가 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국이 위기를 '역 샌드위치' 기회로 만들려면 토목공사 비중을 줄이고 한정된 재원을 생산성을 올릴 수 있는 쪽으로 투입해야 한다. 다른 나라의 부양책이 생산성 증가로 가는데 한국이 토목공사로 간다면 그것이야말로 '샌드위치' 신세를 자초하는 것 아닌가. 멀리 갈 것 없이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이 그것을 말해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