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렁에 빠진 미국 경제를 살리기 위해 상·하원이 절충 끝에 7895억달러 규모의 최종 경기부양법안을 마련했습니다.단일안이 양원에서 통과되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대통령의 날’인 16일 이전에 서명,발효시킬 계획입니다.그동안 논란을 빚었던 ‘바이 아메리칸’조항은 포함됐습니다.국제무역 협정을 준수하는 범위내에서라는 단서를 달긴 했습니다.하지만 경기부양 자금이 투입되는 사회간접자본(SOC) 건설과 보수에 미국산 철강 제품만을 사용하도록 한다는 것이어서 보호무역 논쟁이 가열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미 정부는 이 법안을 잘 활용하면 2년간 적어도 350만개의 일자리를 보존·창출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하지만 시장에서는 실업자 증가 속도 등에 비춰 경기 후퇴를 막기 어려울 것이란 회의적인 시각이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노동부가 이날 발표한 지난주 미국 신규실업수당 청구건수는 62만 3000건으로 시장 예상을 웃돌았습니다.

경기 부양과 함께 이틀전 티모시 가이트너 재무부 장관이 발표한 구제금융방안도 시장에서 신뢰를 얻지 못하는 분위기입니다.데이비드 엘리슨 FBR펀드의 최고투자경영자(CIO)는 “시장은 묘약이 나오길 기대했는데,오히려 금융 부실을 해결하기 위해선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란 사실을 확인하게 됐다”고 말했습니다.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부실 자산의 평가를 어떻게 할지 구체적방안이 나오지 않았고 민간 자본을 활용하겠다는 정책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입니다.이밖에 정부가 은행에 신규 자본을 어느 정도 투입하고 자본 투입에 따른 조건을 어떻게 정할 지를 뚜렷이 밝히지 않은 점도 투자자들을 실망시킨 요인으로 작용했습니다.결국 은행 부실의 심각성만 부각되면서 은행 주가가 곤욕을 치르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가이트너 재무부 장관은 “서둘러 구체적인 지원 방안을 확정하면 자칫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되는 등 정책 신뢰를 떨어트릴 수 있다”며 “납세자들의 돈이 헛되이 쓰이지 않도록 세심하게 실행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소매 판매 반짝 증가,파격 세일에 휘발유 가격 상승 탓

소매판매가 일시적으로 증가했다고 미국 소비자들이 다시 지갑을 열었다고 보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연말 장사를 망친 소매업체들이 연초들어 과감하게 대규모 세일에 나선 결과로 볼 수 있습니다.또 휘발유 가격의 상승도 소매 판매 증가로 이어졌습니다.이런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1월 미국의 소매판매는 전월 대비 1% 반짝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소매판매 전망은 여전히 불투명합니다.대기업들이 감원에 나서면서 일자리를 잃는 사람들이 계속 늘어나는 상황에서 소비가 활성화되긴 어렵기 때문입니다.얼어붙어있는 소비자금융시장도 아직 풀릴 기미가 없습니다.월가 대형 금융사 수장들은 전날 의회 청문회에 나와 경기를 살리기 위해 대출을 늘리고 있다고 말했지만 일선 영업점에서 왠만한 신용으로 은행돈을 빌리기 어려워졌습니다.전문가들은 은행이 악성 부실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한 소비자금융이 활성화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때문에 본격적인 소비 회복은 실업증가가 둔화되고 부동산 가격 하락이 어느 정도 바닥을 쳐야 가능할 것 같습니다.미국의 1월 주택차압은 작년 12월보다 10% 가량 줄었지만 10개월 연속 25만건을 넘었습니다.

이에 따라 오바마 정부는 차압을 막기 위해 모기지 대출자들의 빚상환부담을 덜어주는 방안을 마련키로 했습니다.미국 주택시장이 침체에서 벗어나고 미국 경기가 회복세를 보이기 위해선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뉴욕=이익원 특파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