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3년 가까이 한국 주식을 줄기차게 팔던 외국인의 태도가 작년 말부터 달라졌다.

유가증권 시장에서 외국인은 지난해 12월 8780억원어치를 순매수하더니 해가 바뀐 올해 1월에도 7700억원 순매수했다.

특히 1월28일부터 이달 9일까지 9거래일 연속 순매수 행진을 벌이며 '바이 코리아' 기대감을 키웠다. 9일 연속 순매수는 2006년 초(1월19일~2월1일) 이후 3년여 만이다.

비록 지난 10일부터 외국인들이 일부 주식을 팔기 시작했지만 한국 증시에 대한 외국인의 시각이 달라지고 있다는 평가는 유효하다.

외국인이 본격적으로 한국 주식을 사들일 것으로 기대하기는 이르지만 과거와 같은 일방적인 매도는 없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외국인 U턴 중?

증시 분석가들은 외국인의 태도가 달라진 이유로 크게 세 가지를 꼽는다. 우선 수년간 지속된 매도 전략으로 보유 포트폴리오에서 한국 주식 비중이 지나치게 낮아졌다는 점이다. 해외의 대표적인 한국 관련 자금인 글로벌이머징마켓(GEM)펀드 동향을 살펴보면 외국인 태도 변화의 단초를 발견할 수 있다.

미래에셋증권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으로 GEM 펀드 내 한국물 비중은 글로벌 증시가 고점을 찍었던 2007년 10월 말에 비해 2.31%포인트 감소했다. 이는 같은 기간 러시아(-3.37%포인트) 이머징유럽(-3.12%포인트)에 이어 세 번째로 축소폭이 크다.


이재훈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GEM 펀드 내 한국 주식 비중은 11.13%로 이 펀드가 벤치마크로 삼고 있는 MSCI 이머징마켓의 한국 비중인 13.59%보다도 2.46%포인트 낮은 상황"이라며 "외국인이 줄였던 비중을 되돌리거나 더 나아가 벤치마크 내 주식 비중만큼 채우는 수준까지 간다고 가정하면 이만큼 한국 주식을 더 살 여력이 있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반도체 자동차 등 일부 업종에서 한국 대표 기업들의 글로벌 경쟁력이 재확인된 점도 외국인의 투자심리 완화에 도움을 줬다. 반도체 업종의 경우 독일 키몬다의 파산과 D램 가격 안정,일본과 대만 경쟁업체들의 부진 등이 삼성전자를 비롯한 한국의 대표 IT(정보기술) 업체들의 수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외국인 매수세에 힘을 보탰다. 글로벌 자동차 메이커들이 지난 1월 미국시장에서 판매 감소에 시달린 것과 달리 현대차와 기아차는 오히려 판매가 늘었다는 소식도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환율 효과도 한몫했다. 작년 말 달러당 1260원 안팎이던 환율은 최근 1400원 선까지 올랐다. 환율 상승,즉 원화가치가 떨어졌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외국인 입장에선 한국 주식이 싸게 보이고,또 앞으로 원화가 강세로 돌아서면 환차익까지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임정석 NH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최근 원화 약세의 영향으로 코스피지수를 달러 기준으로 보면 850선 정도에 불과하다"며 "따라서 외국인 시각에서는 한국 주식이 싸게 보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주가가 오르고 원화도 강세로 돌아서면 시세 차익에 환차익을 덤으로 얻는 셈이다. 이 밖에 미국의 경기부양과 구제금융 논의가 구체화되면서 글로벌 금융시스템 붕괴 가능성이 줄었다는 점도 들었다.


◆본격 매수세로 전환할까

외국인의 매수세가 추세적으로 이어질지는 논란이 있다.

최인호 하나UBS자산운용 주식운용본부장은 "반도체 등 일부 업종 중심으로 외국인들이 선별적으로 한국 주식을 사들이고 있지만 환율 효과를 기대한 측면이 많아 추가 매수는 제한적일 것"이라며 "외국인이 더 사려면 글로벌 경기 불황에도 한국 기업들이 타격을 덜 입고 있다는 뚜렷한 신호가 나와야 하는데 당분간 쉽지 않아 보인다"고 지적했다.

외국인들의 매도공세는 마무리됐다는 의견도 있다. 과거 외국인 매도를 촉발한 것은 유가 상승과 증시 고평가였지만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것이다. 김세중 신영증권 투자전략팀장은 "박스권 장세 속에서 외국인들은 덜팔고 더사는 완만한 순매수세 기조를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박해영 기자 bon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