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만 루블의 가치가 있는 고급 속옷들을 자동차와 바꿉니다' '목재를 음식이나 약품과 맞바꿉니다' '현대 산타페 차량을 회로판 또는 운동화와 교환합니다'

뉴욕타임스(NYT)는 8일 최근 러시아 신문이나 온라인에 이 같은 물물교환 광고가 등장하기 시작했다며 경제가 어려워진 러시아에서 물건이 팔리지 않으면서 1990년대 같은 물물교환이 부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1990년대 중반 러시아에서 물물교환은 중소기업의 경우 판매의 50%를, 대기업의 경우는 75%까지 차지하기도 했다.

현재 러시아에서 나타나고 있는 물물교환은 그때와 비교하면 작은 규모이지만 가장 최근의 통계인 작년 11월의 경우를 보면 전체 판매의 3~4%를 차지하고 있다.

물물교환은 경제 악화로 상품이 팔리지 않는 시기에 기업주들이 사업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물물교환은 사업을 한동안 지탱할 수 있게 하지만 생산 감축이나 인력축소 등 회사의 근본적인 구조조정을 지체시키고 세수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모스크바대의 블라디미르 포포프 교수는 "러시아인들은 거만해서 절대 가격을 깎지 않는 경향이 있는데 물물교환에 의존하는 것은 모래 속에 머리를 처박고 숨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문제를 지적하면서도 그러나 어려운 자금사정에 처해 있는 기업주들로서는 물물교환을 단념하기는 힘든 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물물교환이 다시 주목을 받으면서 대형 물물교환 시스템을 만드려는 시도도 나타나고 있다.

한때 상품거래를 통해 신흥재벌인 '올리가르히'가 됐다가 2004년 대선 때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 맞서 출마를 하는 바람에 재산을 탕진한뒤 모스크바 외곽에서 가축을 키우는 '양치기'로 변신한 게르만 스테를리고프는 컴퓨터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한 물물교환 사업을 구상하고 있다.

그의 구상은 6~7개 기업으로 연쇄 물물교환 고리를 만들어 마지막 회사가 맨 처음 회사에 현금을 지급하는 형태의 대규모 물물교환 시스템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신문은 그러나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시장경제가 확대되는 등 러시아의 경제상황이 과거와 크게 달라진 지금 물물교환이 1990년대 수준까지로 다시 커질 것인지에는 의문이 일고 있다면서 물물교환의 부활은 빡빡한 통화정책에 따른 부산물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포포프 교수는 유동성 위기에 처한 러시아에서 통화공급이 계속 위축됨에 따라 기업인들이 생존을 위해 물물교환에 의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뉴욕연합뉴스) 김현준 특파원 jun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