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대통령 취임 이후 미국 정부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금융시스템을 되살리기 위해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FRB는 28일 시중에 더 많은 돈을 풀기 위해 시장에서 장기 미 국채를 매입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는 은행 부실을 털어내기 위한 배드뱅크 설립을 추진 중이다. 특히 티모시 가이트너 재무장관은 이날 "(국유화를 하지 않고) 사유화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은행 지원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언급,뱅크오브아메리카(BOA) 씨티뱅크 등 대형 금융사들의 주가가 급등했다. 정부가 공적자금 투입 은행을 국유화하지 않을 경우 기존 주주들이 감자 등으로 손해를 입을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FRB,디플레 우려 표명

FRB는 이날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직후 발표한 성명을 통해 디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를 분명히 드러냈다. 디플레이션은 경기침체 속 상품가격(물가)이 계속 떨어지는 현상으로,장기 불황의 요인이 될 수 있다. 중앙은행이 이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통화량을 늘리는 것이다. 이미 기준금리를 제로 수준까지 낮춘 FRB가 발권력을 동원해 통화를 무한정 공급하는 '양적 완화' 정책을 강화하겠다고 강조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특히 FRB는 예전에 비해 강한 톤으로 장기 국채를 매입할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했다. FRB가 장기 국채를 사들이면 금리가 하락(채권가격은 상승)한다. 금리가 낮아지면 시중 유동성을 확대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소비자와 기업들에 돈이 흘러가고 침체된 경기가 회복될 것으로 보고 있다. FRB는 이미 국책 모기지(주택담보대출) 회사가 발행한 채권과 모기지 관련 증권,기업어음(CP) 등을 매입함으로써 금리를 떨어뜨리는 효과를 거뒀다.

◆배드뱅크 설립방안 구체화

미 정부는 금융시스템 안정을 위해 배드뱅크를 설립,은행의 부실을 사주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셰일라 베어 FDIC 의장은 1989년 설립돼 수백개의 주택 · 대부조합(S&L)을 유동화시킨 정리신탁공사(RTC)를 언급하며 "FDIC가 배드뱅크 운영을 전담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로라 타이슨 백악관 경제보좌관도 이날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에서 "대출을 활성화하기 위해선 정부가 은행 부실자산을 없애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의회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배드뱅크 설립 가능성이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크리스토퍼 도드 상원 금융위원회 위원장은 "배드뱅크 설립 구상은 상당히 설득력 있는 방안"이라며 "문제는 부실 규모와 자산 매입 방식"이라고 강조했다.

배드뱅크가 설립될 경우 금융권 구제자금(TARP) 2차분 3500억달러와 국채 등을 발행해 새로 조달한 자금을 활용, 은행 부실자산을 매입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어느 가격에 부실자산을 사줄지와,은행들의 부실 규모가 분명히 드러나 정부가 또다시 대규모 자본을 투입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문제점이 있다.

뉴욕=이익원 특파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