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란 무엇인가. ' 미국 스미스소니언 자연사박물관의 계통생물학자인 애드리언 포사이스는 섹스를 "생명의 다양성과 아름다움의 비밀을 이해하는 열쇠"라고 말합니다. 그는 최근 번역된 《성의 자연사》(양문 펴냄)에서 생물들의 다양한 섹스 행태를 분석하며 불완전한 하나의 개체가 '짝'을 지음으로써 완전한 개체로 거듭나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보여줍니다. '동물과 식물,그리고 인간의 섹스와 구애에 관한 에세이'라는 부제를 단 이 책은 '짝짓기'를 단순한 생물학적 영역이 아니라 사회학적 관점으로 확대시켜줍니다.

수컷의 정자 경쟁이 고환의 크기에 영향을 미친다는 대목을 볼까요. 흔히 고환이 수컷의 몸 크기에 좌우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겠지만 길이 30m,무게 150t인 흰긴수염고래의 고환은 약 90㎏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몸무게가 흰긴수염고래의 절반에 불과한 참고래의 고환은 500㎏이나 됩니다. 크기도 2.7m가 넘는군요. 왜 그럴까요. 여러 마리의 수컷이 암컷 한 마리의 주위를 몇 시간이나 맴돌며 교미하는 난교 시스템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는 이를 '경쟁의 경제학'이라는 용어로 설명합니다. 거의 모든 생물의 섹스에는 수컷과 수컷,암컷과 암컷,수컷과 암컷 사이의 이기심이 충돌한다는 거죠.동물의 세계를 보면 수컷들은 암컷을 차지하기 위해 다른 수컷들과 치열하게 싸웁니다. 암컷도 마찬가지입니다. 수컷은 자신이 퍼뜨리는 자손의 수를 가능한 한 늘리려 하지만 이는 가능한 한 많은 수컷과 교미함으로써 최고의 유전자를 받아들이려는 암컷의 본능과 부딪칩니다.

일부 암컷들은 생식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정자들 사이의 경쟁이나 수컷들 사이의 갈등을 이용하는 방법을 쓰기도 하지요. 수컷 또한 암컷의 난자를 독점하기 위한 전략과 전술을 구사합니다.

'경쟁의 경제학'은 극단적인 섹스 행태를 낳기도 하지요. 암컷이 자신과 교미한 수컷을 먹어버리는 호랑거미의 '섹스 카니발리즘',교미한 수벌은 또 한 번의 기회를 얻기 어렵기 때문에 단 한 번의 교미에 모든 것을 걸고 죽음에 이르는 꿀벌의 세계,동성에게 생식기를 삽입해 사정함으로써 그 동성이 자신의 정자를 암컷에게 전달하도록 하는 수컷 빈대의 섹스 행태도 경쟁의 경제학이 낳은 산물이라고 합니다.

고두현 문화부 차장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