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는 금융시스템을 안정시키기 위해 공적자금 투입과 별도로 배드뱅크(bad bank)를 설립해 은행의 부실 자산 등을 매입해주기로 했다.

또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는 소비자 금융을 활성화하기 위해 은행이 발행하는 채권에 대한 보증 기간을 기존의 3년에서 10년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20일 취임식 이후 수일 내 구체적인 금융안정화 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7일 미 재무부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FDIC 관계자들이 버락 오바마 차기 정부와 협의를 통해 배드뱅크를 설립해 은행들의 부실자산을 사들이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보도했다.

정부의 구제금융에도 불구하고 자산 부실화로 은행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데 따른 대책이다. 유동화가 어려운 금융사의 부실자산 문제를 처리하지 않고는 대출 활성화 등 금융시스템을 정상화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구제금융 전략을 수정한 것으로 풀이된다.

씨티그룹,뱅크오브아메리카(BOA) 등 구제금융을 받은 대형은행들이 작년 4분기 대규모 손실을 내자 금융권 전체의 자산부실화에 대한 우려가 증폭됐다. 씨티그룹은 작년 4분기 부실자산 상각 등으로 82억9000만달러의 순손실을 내 5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메릴린치를 인수한 BOA도 작년 4분기 17억달러의 손실(153억1000만달러의 메릴린치 손실 제외)을 내며 정부의 추가 구제금융 지원을 받기로 했다. 부실화 가능성이 큰 자산을 잔뜩 보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은행에 자본을 투입해봐야 '깨진 독에 물 붓기'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배드뱅크에 부실자산을 넘기면 충당금 적립과 자산 상각 부담을 덜어 대규모 추가 손실 발생을 막을 수 있다. 정부 입장에서는 추가 자본 투입에 따른 은행 국유화를 피할 수 있다. 또 주식 가치 희석으로 인한 보통주 투자자들의 손실도 막을 수 있다.

쉴라 베어 FDIC 의장은 "구제금융자금(TARP)에서 자본을 조달해 1989년 설립돼 수백개의 주택대부조합(S&L)을 유동화시킨 정리신탁공사(Resolution Trust Corp)와 같은 기구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배드뱅크가 설립돼 은행의 불확실성을 해소해주면 민간 자본의 은행투자가 가능할 것이란 전망이다.

정부가 운영하는 배드뱅크는 은행들이 보유하고 있는 주택 모기지뿐 아니라 최근 부실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상업용 부동산 모기지 및 카드론 오토론 등 소비자 금융 관련 자산이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FDIC는 소비자 금융과 관련된 은행의 일부 채무에 대한 유동성 보증 프로그램 기한을 종전 3년에서 10년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한편 FDIC는 일리노이주 내셔널뱅크오브커머스와 워싱턴주의 뱅크오브클락카운티를 폐쇄해 올 들어 첫 미국 은행 파산 사태가 발생했다.

뉴욕=이익원 특파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