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은 얼고 초목은 숨을 죽여 산야에서 얻을 것이 거의 없는 겨울.대신 우리 땅을 두르고 있는 바다에서는 겨울이 되면 만난 것들을 내놓는다. 멀리 산지까지 가지 않고,서울 및 수도권 인근에서 손쉽게 찾아갈 수 있는 겨울 맛집들을 소개한다.

◆굴 요리

먼저 겨울 제철 음식으로 빼놓을 수 없는 게 굴이다. 서해에서 나오는 굴은 잘고 단단하며 향이 강하다. 생으로 먹어도 맛있지만,그 향을 더 즐기려면 굴밥이 낫다. 조그만 돌솥에 굴을 올려 밥을 짓고 매콤쌉쌀한 달래를 다져 넣은 조선간장으로 척척 비벼 먹는 맛이란! 서산 간월도에 굴밥집이 몇 있지만,서울에서는 드물다. 다행히 간월도에서 굴밥으로 유명한 '맛동산' 음식점이 경기도 시흥시에 분점 '맛동산 오이도'점을 냈다.

굴전은 작지도 크지도 않은 중간 크기의 굴로 만들었을 때 굴 향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올봄이면 도심 재개발로 사라질 종로 피맛골의 '열찻집' 굴전은 약간 삭힌 듯한 묘한 향내를 뿜어내는 것이 매력이다.

굴의 시원한 맛은 국물요리에서도 그 특징을 잘 드러내는데,굴짬뽕이 그 대표 음식이다. 굴짬뽕의 '원조'라는 을지로3가의 '안동장'은 시원하고 개운한 맛의 '맑은 굴짬봉'이,매운 중국요리로 승부를 걸고 있는 신촌 '완차이'는 '매운 굴짬뽕'이 맛있다. 해물 샤브샤브 뷔페로 유명한 수원 '칭기즈칸'의 즉석 굴짬뽕은 굴과 채소의 신선함을 잘 살려 강렬한 매운맛에도 시원함이 뒤를 따른다.

대구탕

남해에서는 대구가 제철이다. 특히 진해만의 가덕도 용원항에는 산 대구가 지천이다. 진해만은 대구의 산란지로 겨우내 살진 대구들이 잡힌다. 치어 방류 덕에 금년엔 풍어를 이뤄 가격이 많이 내려갔다.

서울에서는 용산 삼각지의 '대구탕 골목'에 있는 식당들이 대구매운탕과 대구맑은탕(지리)을 싸고 맛있게 내는 것으로 이름이 나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냉동 대구를 쓴다.

수도권에서 생대구탕을 전문으로 하는 곳은 드문 편이나,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장성생태탕'과 경기도 평촌시 로데오거리에 있는 '탕과막회'의 겨울철 생대구탕은 권할 만하다. 보통 다른 계절에는 매운탕으로 먹는 게 나을 수도 있겠지만,겨울에는 대구가 제철일 때이므로 맑은 탕으로 대구살의 깊은 맛을 즐기는 편이 좋다.

또 탱글탱글한 생곤이를 이때 아니면 맛보기 어려우므로 내장을 추가하는 것도 한 요령이다.

◆매생이와 과메기

겨울 별미 중에 최근 부쩍 인기를 끄는 것이 매생이다. 굴을 넣고 끓이는 매생이국은 은은한 바다향이 우러나고 부드러운 식감으로 속을 편안하게 한다. 경기 분당에서 매생이 전문점으로 소문난 '분당칼국수'는 부드러움과 향에서 최고로 쳐주는 완도 매생이만을 사용한다고 한다. 매생이국은 술 마신 다음날 속풀이 음식으로 권할 만하다. 매생이칼국수는 영양 밸런스 면에서 여성에게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과메기는 최근 5~6년 새 미식가들의 입소문으로 유명해진 경북 포항 지방의 겨울 별미이다. 꽁치를 겨울 바람에 1주일 정도 말려 생으로 먹는 음식인데,돌미역에 당파 올리고 초장을 곁들여 먹는다. 요즘 포항 죽도시장이나 구룡포시장에 가면 온통 과메기가 널려 있다. 최근 수도권에 부쩍 늘어난 막횟집에서는 대부분 과메기를 낸다. 과메기는 어떻게 말리느냐에 따라 맛 차이가 크므로 과메기를 잘 아는 이 지역 출신의 사람들이 운영하는 식당을 찾는 게 좋다.

물메기·양미리·도루묵

겨울 별미가 가장 많이 나오는 바다는 역시 동해다. 애주가들의 뒤풀이 음식으로 인기가 있는 물메기탕(지역에 따라 곰치국,물곰탕,물곰치국으로 불림)도 이때가 제철이다. 겨울 물메기는 진득한 알을 품고 있어 묘한 식감을 주며 맑고 개운한 맛은 쓰린 속과 언 몸을 녹여주기에 그만이다.

강원 지방에서 유래한 물메기 조리법은 신 김치를 넣기 때문에 밥과 함께 먹어야 어울린다. 경상도에서는 무와 파,마늘만으로 끓여 술안주용에 가깝다. 강원과 경북식 막회를 내는 음식점에서는 뒤풀이용으로 낸다.

겨우내 알이 드는 동해 생선으로는 양미리와 도루묵을 빼놓을 수 없다. 직화에 구워 먹는 것이 제일이고,탕으로 해도 역시 별미다. 속초와 강릉에서는 흔한 음식이지만 서울에서는 이 두 생선을 메뉴에 올려 놓는 식당은 흔치 않다. 특히 양미리를 내는 식당은 아주 드물며,포장마차에서나 간혹 볼 수 있다. 강원도 서민들이나 먹던 싸구려 음식이라는 이미지 탓인 듯하다. 서울 지하철 5호선 둔촌동역 옆의 재래시장 골목에 가면 양미리와 도루묵구이를 내는 포장마차가 많다. 양미리와 달리 도루묵은 서울의 막횟집에선 겨울철 주요 메뉴로 진입했다.

생태·동태탕

명태도 제철이기는 한데,근해 명태는 예전처럼 많이 잡히지 않는다. 대부분 원양 냉동 명태이다. 그러나 이도 겨울엔 제맛이 들며,따끈하고 개운한 국물의 동태탕은 겨울 별미 중 으뜸에 들 만하다.

광화문 '안성또순이'의 시원한 생태탕,여의도 '상은북어국'의 수수로운 동태탕이 더 맛날 때이다. 부천 중동의 '창이생동태탕'에서는 동태 한 마리를 통째로 넣어 끓이는 '한마리탕'을 내는데,동태를 독특한 해동 기술로 녹여 살이 야물면서 입안에서는 부드럽게 녹아 생태 맛을 내게 한다.

겨울 음식이 아닌데,겨울 음식으로 잘못 소개되는 음식이 있다. 황태이다. 강원 인제군 진부령 근처 태백산맥 서쪽 사면에 황태 덕장들이 있는데 3월까지 눈 쌓인 명태를 구경할 수 있어 겨울 음식으로 착각하는 듯하다. 황태를 먹자면 지금보다는 3월 넘어 나오는 햇황태가 낫다.

글/사진=황교익 맛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