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한 수법에 속고… 또 속고…

검찰이 불법 다단계판매(피라미드) 조직과 전쟁을 벌이고 있다. 인천지방검찰청은 '제2의 주수도(불법 다단계조직 제이유그룹 회장.징역 12년 확정)'라 불리는 조희팔씨가 최근 중국으로 밀항했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그를 쫓고 있다.

조씨는 피해 금액이 무려 4조여원에 달한다고 알려진 불법 다단계 조직 '리브'의 실제 운영자다. 지금까지 파악된 피해자만도 11만명이 넘는다. 경기 불황을 틈타 '미분양 아파트 처리 전문기업'을 표방한 피라미드 조직도 출현,경찰이 수사를 벌이고 있다. 법무부는 29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중점 근절 5대 범죄 중 하나로'불법 다단계 조직'을 꼽았다. 아무리 근절하려 해도 독버섯처럼 번져 나가는 다단계는 어떤 함정이 있는 걸까.

◆다단계 판매의 필승 전략 '통장 던지기'

다단계에 빠지지 않기 위해 가장 주의할 점은 '통장 던지기'에 속지 않는 것이다.

불법 다단계의 원리는 △물건 판매 실적에 따라 수당이 주어지고 △다른 구매자를 하위 판매원으로 끌어들이면 그 하위 판매원의 실적에 따라서도 수당을 받으며 △이 두 가지 실적에 따라 판매원→팀장→부장→국장→이사 등으로 직급이 오르고 그에 따른 수당을 받는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통상의 상식과 판단력을 갖춘 사람들도 가장 가까운 지인이 통장을 보여주고 유혹하면 다 넘어간다"고 혀를 내둘렀다.

A가 1000만원을 입금했는데 통장에 매주 돈이 일정액씩 들어와 6개월 후 1300만원이,1년 뒤에 1700만원이 됐다고 하자.A는 이 통장을 B에게 보여주며 "130% 확정 수익이 보장된다. 노다지를 캐는 것 아니냐.일정 직급 이상이 되면 네 운명이 바뀐다"고 유혹한다. 이때 B가 A의 권유대로 가입을 한다면 그때부터 B는 다단계의 늪에 빠져 버린다. 다단계는 '끊임없이 아랫돌 빼서 윗돌 막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A의 통장에 입금된 돈은 A보다 먼저 가입한 다른 사람의 돈을 빼서 지급하는 것일 뿐 정상적인 투자나 생산 활동에 쓰여 수익이 발생한 게 아니다. 때문에 조직에선 기하급수적으로 회원을 확보해야 한다. 일부 손해를 본 사람들은 다시 다단계로 이를 만회하겠다며 악순환의 구렁텅이에 빠져든다. 그러나 이때 해당 다단계 조직의 회장 등은 돈을 갖고 잠적해 버린다. 그리고 지역을 바꿔 이름만 변경해 영업을 계속한다. 인천 리브,대구 씨엔,부산 챌린이 모두 동일한 업체인 것이 대표적 사례다.

◆다단계의 끝없는 진화

다단계는 1940년대 미국에서 처음 등장했다. 합법적인 다단계가 국내에서 변질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중반으로 추정된다. 검찰에 따르면 1997년 IMF사태 이후 금융권에서 퇴출된 사람들과 다단계 조직이 결합하는 양상이 나타났다. 다단계 조직이 이들로부터 금융영업 노하우를 배운 것이다.

1990년대 말~2000년대 초 벤처 붐도 한몫 했다. 창업 투자회사나 벤처 인큐베이터 등 합법적인 영업 형태를 가장한 채 실은 피라미드 형태 영업을 하는 것이다. 벤처 붐이 꺼지고 나서부터는 부동산 경.공매를 통한 고수익 보장이 주요 테마가 됐다. 화장품,건강보조식품 등을 활용한 상품 마케팅도 잘 알려진 수법이다. 제이유 사건은 이러한 상품마케팅 다단계 사기 수법에서 물품뿐 아니라 투자금까지 되돌려 준다는 '변칙 공유 마케팅'을 구사했다.

현재 다단계의 대세는'렌털 마케팅'이다. 이는 의료기 게임기 자동자판기 등을 사서 특정 회사에 임대하거나 PC방 IPTV사업 엔터테인먼트사업 등에 투자하는 것이다.

불법 다단계 조직은 "운영은 우리가 다 알아서 하고 수익을 보장할 테니 돈만 투자하라"고 유혹한다. 4조원대 리브 사기 사건도 의료기 렌털 마케팅을 썼다. 상품권 마케팅도 있다. 상품권 구입비 명목으로 100만원 이상 투자하면 환전 수수료를 공제하고 투자 자금의 130~140%를 순차적으로 6~8주에 걸쳐 지급하겠다는 보상 플랜을 내놓는 식이다.

최근 들어 가장 진화된 다단계 사기 수법은 해외 수익사업이다. 해외 카지노나 자원개발 사업에 투자한다고 자금을 끌어모으는 수법이다. 서울중앙지검이 구속 기소한 K사 대표 강모씨와 M사(K사와 동일 업체) 대표 김모씨의 경우 금광을 캐는 아프리카 가나 족장 및 외교부 대사 등과 함께 촬영한 사진과 채굴한 금 사진 등을 이용해 중.장년층 여성 등 3161명을 상대로 178억여원을 끌어들였다. 검찰 측은 "피라미드 사기꾼들은 마약 중독자처럼 실형을 살고 나와도 또 범죄를 저지른다"며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검찰은 불법 피라미드 업체 관련자 및 현황 자료를 내년 초부터 데이터베이스(DB)화해 일괄 입력 관리,동종 사범의 재발을 철저히 막겠다는 복안이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