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수 대리(34ㆍ가명)는 약이 잔뜩 올랐다. 얼마 전 회의에서 연말연초 마케팅 기획안을 제출했다. 나름대로 심혈을 기울인 회심작.그렇지만 팀장인 김 차장으로부터 받은 건 면박뿐이었다.

"경쟁사에서 하는 것과 비슷하잖아"는 게 김 차장의 반응이었다. '뭐가 비슷하냐'는 말이 목까지 차올랐지만 꾹꾹 눌러 참았다. 그리고 나중에 알았다. 김 차장이 바로 그 아이디어를 자기 것인 양 윗사람에게 보고했다는 사실을.열이 후끈 달아 오른다.

김 차장은 늘 그랬다. 아랫사람이 잘한 건 다 자기 공이다. 사소한 잘못이라도 할라치면 무능하다고 몰아붙인다. 김 차장 밑에서 일한지가 벌써 2년째.이제나저제나 바뀌기를 바라지만,상사를 맘대로 바꿀 순 없다.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엄동설한이다. 경기불황으로 언제 구조조정이 실시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연초 인사철을 앞두고 있기도 하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쥐꼬리만한 월급이라도 받으려면 김 차장 아래에서 살아남는 법을 터득하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왕자병형'에게는 아부로 승부하라

김 차장 같은 사람은 자기중심적인 상사다. 상당수 상사가 이런 유형이다. 아랫사람들이 자기를 찬양하고 자신에게 공을 돌리기를 원한다.

이런 상사 밑에서 살아남으려면 자신의 몫과 자존심을 포기하는 게 좋다. 대신 '아부 기술'을 잘 활용해야 한다. 무조건 경청하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아는 척은 아예 하지 말라.지시사항은 죽었다고 이행해야 하는 건 물론이다. 상사가 원하는 걸 이루도록 돕겠다고 하면서 '자기 사람'이라는 인식을 갖도록 하는 게 좋다.

아이디어를 뺏으려 한다면 줘버려라.따지고 보면 윗사람의 성과는 자신의 성과와 연계돼 있기도 하다. 지시가 잘못돼 문제가 생기면 '제 잘못입니다'하고 넘기는 게 정신건강을 위해서도 좋다. 이런 사람일수록 마음이 꽁하다. 한번 밉보이면 마음에 담아둔다. 뒤끝이 있는 만큼 섣불리 대들려 해서는 곤란하다.

◆'폭군형'에게는 때론 강하게 대들어라

무조건 자기를 따르라는 막무가내형 상사다. 자기 생각이 모두 옳다는 스타일이다. 당연히 아랫사람 얘기를 잘 듣지 않는다.

이런 상사에게는 우선 타깃이 되지 않는 게 현명하다. 그러려면 상사 앞에서 지나친 자신감을 보이지 말아야 한다. 어렸을 때 새 운동화를 신고 가서 자랑하다 보면 샘이 난 덩치 큰 친구가 운동화를 빼앗아 더럽혀버린 기억이 생생하지 않은가.

따라서 평소엔 죽어지내는 게 상책이다. 그렇지만 이런 사람들은 의외로 '사나이 기질'을 갖고 있다. 뒤끝이 없어 마음에 담아 두지도 않는다.

그런 만큼 삭이고 삭였다가 어느 날 갑자기 '한방'지르는 것도 생각해볼 만하다. 물론 누가 생각해도 그의 지시가 터무니없다고 느껴질 때라야 한다. 모두 앞에서 한번 강하게 맞서 보라.의외로 효과가 있을 것이다.

◆'책임회피형'에선 스스로 살아남아라

소심한 우유부단형 상사다. 어떤 사안이라도 쉽게 결정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부하 직원의 말을 경청하지도 않는다. 그저 "이거는 이게 문제고,저거는 저게 문제"라는 말만 되풀이한다.

윗사람 아랫사람 눈치 보며 결정과 해결을 미루고 또 미룬다. 꼭 결정할 일이 있으면 부하가 A안, B안, C안 다 검토해서 가져오길 바란다.

이런 상사들은 자유방임을 주장하면서 스스로 '나는 민주적인 상사'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은 아랫사람을 위한 지시도,충고도,조언도 하지 못하고 어영부영하는 상사일 따름이다.

이런 상사에게는 절대로 '이런 건 부장님께서 해주셔야죠'라고 강요하면 안 된다.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관계만 나빠진다. 최선의 방책은 상사의 도움 없이 스스로 살아남는 것이다. 상사에게 묻지 말고 알아서 행동하고,갈등도 가급적 스스로 조정해야 한다.

◆'실력지상주의형'에게는 실력뿐

부하의 인간성은 따지지 않고 그저 실력으로 승부하는 걸 원하는 상사도 있다. 자신감이 강하고 자기 수준에 맞추지 못하는 부하는 인간 이하로 취급하는 스타일이다.

이런 상사 밑에서 살아남으려면 당연히 상사가 원하는 실력을 갖춰야 한다. 어설픈 아부는 되레 반감만 산다. 아부를 하려면 확실하게,특히 상사의 일처리 능력이 뛰어나다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나도 당신처럼 되고 싶다'는 메시지를 팍팍 날리는 게 좋다.

말만 늘어놓아도 역효과다. 상사를 따라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인상을 심어줘야 한다. 학원에 다닌다거나 자격증을 준비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넌지시 하라.물론 업무에 방해받고 있다는 느낌을 줘서는 안 된다.

이런 상사를 만나면 몸과 마음이 모두 피곤할 수밖에 없지만 수면 아래에서 열심히 발을 구르는 백조처럼 노력하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천사표'라고 방심하지 말라

못된 상사만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모두가 인정하는 '천사표'도 있는 법.잘못했어도 대체로 너그러이 넘어가고,부하를 인간적으로 존중해 준다.

이런 상사를 만난 당신은 행운아다. 그러나 지금 같은 불황기에 천사표 상사만 믿고 있어서는 곤란하다. 부하를 세게 다그치지 못하는 상사 밑에 있다 보면 마음이 풀어져 실적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자칫하다가는 상사도 당신도 모두 잘리는 불운을 맞을 수 있다.

◆'사기꾼형'아래에선 몸조심이 최고다

앞뒤가 다른 상사.당신을 구슬리기 위해 이런저런 약속을 늘어놓다가 나중에는 오리발을 내민다. 때로는 자신의 사적인 목적을 위해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일을 시키기도 한다. 이럴 경우 상사가 한 말을 문서화해 두고 다른 이들에게 상사의 지시내용을 확인해야 한다.

부패한 상사도 문제다. 실적을 조작하거나 회사 자금을 사적으로 유용하는 상사도 있다. 이런 상사를 고발할 경우엔 주의해야 한다.

윗선이 상사와 한통속이라면 자신만 피해볼 수 있다. 잘 판단해서 스스로 보호할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내부 감사 등에 상사가 걸렸을 때 빠져나갈 수 있도록 상사의 이메일과 지시 등을 기록해 두는 것도 필요하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