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의 전자BG(비즈니스 그룹)가 안산에 있는 생산공장을 내년 1월 말까지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감산과 계열사 매각에 이어 '구조조정' 수위를 한 단계 더 높인 것이다. 재계에서는 두산의 공장 폐쇄를 신호탄으로 한계사업장의 퇴출작업이 자동차 조선 철강 등 주력산업으로 확산되지 않을까 주시하고 있다.



◆고강도 구조조정

두산그룹 고위 관계자는 21일 "두산전자가 운영 중인 5곳의 공장 가운데 생산성이 가장 떨어지는 안산공장의 문을 닫기로 최근 방침을 세웠다"며 "공장에서 근무하고 있는 200명 가량의 근로자는 최대한 증평과 익산공장 등으로 전환배치하고 나머지는 희망자를 우선으로 퇴사시킬 계획"이라고 밝혔다. 공장 폐쇄라는 강수를 꺼내든 전자BG는 가전제품용 인쇄회로기판(PCB)을 주로 만드는 회사다. 안산공장은 PCB에 들어가는 '매스 램(mass ram)'을 생산해 왔다. 전체 전자BG의 매출액 가운데 안산공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10% 안팎이다.

㈜두산이 안산공장을 없애기로 결정한 가장 큰 이유는 글로벌 경기침체로 전방산업인 전자업계의 수요가 급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TV 냉장고 등 가전제품 판매량이 떨어지면서 PCB 수요도 함께 추락하고 있는 것.최근 들어 중국 대만 등으로부터 저가 제품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는 것도 공장을 포기하게 만든 요인이다. 두산그룹 관계자는 "PCB가 고부가가치 상품이 아니어서 그동안 중국의 저가 공세에 시달려 왔다"며 "안산공장은 특히 구미와 증평 익산 김천 등에 있는 다른 공장에 비해 시설이 낙후된데다 불량률도 높아 공장 합리화 차원에서 폐쇄키로 했다"고 설명했다.

㈜두산 전자BG의 지난 3분기 매출액은 4110억원으로 전년동기(3779억원)에 비해 8.8% 증가했다. 그러나 경쟁국의 저가 공세로 수익률은 떨어져 3분기 영업이익이 154억원으로 한해 전(186억원)보다 20% 가까이 줄었다. 글로벌 경기침체가 본격화한 4분기에는 매출액마저 증가세가 크게 둔화되거나 오히려 줄어들 우려가 커진 상태다.

◆발빠르게 정리한다

㈜두산은 두산그룹의 '사업형' 지주회사다. 그룹 계열사를 아우르는 지주회사 역할을 하는 동시에 전자 주류 등의 사업을 별도로 꾸려 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미국발 금융위기가 몰려 오면서 그룹 전략을 수정했다. '사업형' 지주회사를 '순수' 지주회사 형태로 전환한다는 것.

이에 따라 주력 사업부문의 정리 작업을 발빠르게 진행 중이다. 포장용기를 생산하던 테크팩BG는 지난 달 국내 사모펀드인 MBK파트너스에 4000억원을 받고 팔아 넘겼고 '처음처럼'을 생산하는 주류BG는 매각작업을 진행 중이다. 최근 물적 분할을 단행한 출판BG도 곧 매각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두산그룹의 주력 계열사들도 몸집을 줄여나가고 있다. 두산인프라코어는 지난 달 이사회를 통해 방산사업부문을 물적 분할키로 결의했다. 장갑차와 지대공 유도미사일 등을 만드는 방산부문을 떼어내 매각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더불어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지분 22% △인천공장 부지 △여의도 사옥 등도 매각 검토 리스트에 올라 있다.

두산인프라코어와 함께 미국 소형 건설장비업체인 밥캣 인수에 참여한 두산엔진도 STX지분 10%를 매각할 지 따져보고 있다. 두산그룹 관계자는 "현재 진행중인 일련의 구조조정 작업은 장기 불황에 선제적으로 대비하기 위한 조치"라며 "밥캣 등으로 유동성이 부족해졌다는 일각의 분석은 사실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사업장 폐쇄 확산되나

글로벌 경기침체의 골이 깊어지면서 전자 자동차 조선 등 국내 주력산업에도 한계상황에 몰린 사업장이 늘고 있다. 공급과잉과 가격 급락의 이중고를 겪고 있는 반도체 업계는 잇달아 노후라인을 없애고 있다. 공장 폐쇄 직전 단계까지 몰린 것이다. 하이닉스는 미국 오리건주 유진 공장의 문을 지난 9월 닫은 뒤 새 주인을 찾고 있고 삼성전자도 기흥공장의 노후 라인을 폐쇄했다.

수요 급감에 신음하고 있는 자동차업계도 마찬가지다. 자동차부품업체인 한국델파이는 이달 22일부터 내년 1월4일까지 대구공장과 충북 진천공장 등 전국 5개 공장을 한시적으로 멈춰 세웠다. 조선업계에서는 중소 조선사가 문제다. 국내 대형 조선사에 매각을 의뢰하는 곳도 있지만 조선업 시황이 얼어붙어 있어 사업장이 그대로 유지될 가능성은 낮다는 분석이다. 재계 관계자는 "국내 업체들이 지금까지는 감원 감산 감봉 등 이른바 '3감'을 통해 근근히 버텨오고 있지만 상황이 더욱 악화되면 '공장 폐쇄'라는 고강도 카드를 꺼내들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