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욱 < 경희대 교수ㆍ경제학 >

국가가 점점 시장이 할 일을 대체하고 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요구가 거세다. 큰 정부를 외쳐 왔던 정부 개입주의자들은 그렇다 하더라도 그 동안 '작은 정부 큰 시장'을 외쳐 왔던 사람들조차 정부가 적극적으로 시장에 개입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이번 금융위기가 시장실패에서 비롯되었을 뿐만 아니라 현재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여론 때문인지 시장에 대한 정부의 간섭이 거침없다. 은행을 압박하며 부실을 막아줄 테니 기업들에 돈을 풀라고 하고 있다. 물론 지금은 경제위기 상황이다. 그리고 이러한 경제위기에 정부가 해야 할 일이 분명 있다. 그러나 아무리 시기가 그렇다 하더라도 궤도를 벗어나면 곤란하다.

더군다나 이번 위기의 원인은 시장실패가 아닌 정부실패다. 잘못된 정부 정책에 의해 시장이 교란되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필자가 지난 10월17일자 칼럼에서 밝힌 것처럼 이번 글로벌 경제위기를 촉발시킨 미국의 서브프라임 위기는 미국 정부의 잘못된 정책 때문에 발생했다. 미국 정부와 의회가 은행들로 하여금 신용도가 낮은 서브프라임에 대출하도록 지역재투자법(Community Reinvestment Act)을 개정했고,모기지 전문회사인 프레디 맥과 패니메이의 손실을 보증해 주었다. 이러한 조치는 시장 참가자들의 위험추구 행위를 부추겼고,이것은 주택부문의 과잉투자로 이어졌다. 여기에 장기간에 걸친 방만한 통화정책이 주택시장을 더욱 과열시켰던 것이다.

미국의 정부와 의회가 프레디 맥과 패니메이의 손실을 보증하지 않았다면,지역재투자법을 개정하지 않았다면,그리고 방만한 통화정책으로 유동성 과잉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은행들이 서브프라임을 촉진하는 일도,시장참가자들의 위험추구 행위도 그리 심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어떠한가. 제대로 된 자유시장경제를 하기는 했나. 11년 전 외환위기 이후 제대로 된 구조조정을 했더라면,그리고 지난 정부의 이념에 사로잡힌 정부 정책이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가 이렇게까지 어려움을 겪지는 않을 것이다.

김대중 정부는 '시장경제와 작은 정부'라는 기치 아래 우리 경제의 구조를 바꾸어 놓겠다고 공언했지만 결과는 그와 반대였다. 그리고 노무현 정부는 각종 개혁 명분으로 기업 및 부동산 관련 규제를 강화했고,세금폭탄이라 불릴 만큼 세금을 대폭 올렸으며,그리고 친노(親勞) 성향 정책으로 노동시장을 경직시켰다.

결국 이러한 경제 구조는 기업의 투자환경을 악화시키는 등 민간의 활발한 경제활동을 가로막아 경제를 침체에 빠뜨렸다. 이렇게 위태위태하던 상태에서 외부의 충격을 받아 지금 우리가 겪는 고통이 다른 나라에 비해 유난히 큰 것이다.

정황이 이러한데 정부로 하여금 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문제를 해결하라고 하는 것은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고 잘못된 처방을 내리는 것이다. 은행의 부실을 막아줄 테니 기업들에 돈을 풀라고 하는 것과 같은 정부의 시장개입은 경제를 더욱 불안정하게 하고,지금의 고통을 미뤄 놓아 나중에 더 큰 고통을 겪을 위험이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그렇다고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손을 놓고 있으라는 말이 아니다. 정부가 해야 하는 일은 그동안 훼손되었던 시장경제의 원리를 회복시키는 일이다. 시장참가자들이 위험에 따라 비용을 치르고 보상을 받도록 하는 개인 책임의 원칙을 확립해야 한다. 개인의 책임과 시장의 힘을 방해하는 제도와 규제들을 걷어내고,세금을 낮추며,노동시장을 유연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 우리 경제는 지금의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안정적으로 성장해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