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양적완화' 다시 채택

일본은행이 미국처럼 경기부양을 위해 양적 통화완화정책을 다시 채택했다. △기준금리 인하 △국채 매입 확대 △기업어음(CP) 매입 등은 지난 16일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제로금리와 양적완화 정책을 선언한 것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다. 사실상 발권력을 동원해 시장에 돈을 쏟아부어 경기를 살리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19일 금융정책결정회의는 오전 9시에 시작해 오후 2시까지 무려 5시간가량 걸렸다. 이처럼 진통을 겪은 끝에 정책위원 8명 중 1명을 제외하고 7명의 찬성으로 금리인하 안건이 통과됐다.

일본은행의 이번 결정은 미국의 제로금리 선언 이후 예견됐던 것이다. 미국의 파격적인 금리인하로 기준금리(종전 연 0.3%)가 미국(0~0.25%)보다 높아지는 역전현상이 발생하면서 엔화 가치는 13년 만에 최고치인 달러당 87엔대 초반까지 치솟았다. 그대로 뒀다간 도요타자동차 등 주요 수출기업들이 '엔고 직격탄'을 맞아 일본 경기를 더욱 악화시킬 게 뻔했다. 일본의 경기는 1970년대 1차 오일쇼크 이후 최악의 상황으로 얼어붙고 있다. 일본 정부는 이날 각료회의를 열고 내년 실질 경제성장률이 0%,명목 성장률은 0.1%에 그칠 것이라는 경제전망을 내놨다. 일본 정부가 실질 성장률을 0%로 예상한 것은 2002년 이후 7년 만이다.

이번 회의에서 주목되는 건 금리인하뿐 아니라 사실상의 양적완화 조치도 결정했다는 점이다. 일본은행은 앞으로 기업들로부터 CP를 직접 사주고,은행들이 갖고 있는 국채를 사들이는 규모도 크게 늘리기로 했다. 시장에선 이를 양적완화 조치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처럼 FRB에 이어 일본은행도 기업CP 매입을 결정함에 따라 한국은행의 대응이 주목되고 있다.

물론 이번 방식은 일본은행이 2001년 3월부터 2006년 3월까지 5년간 시행했던 양적완화 정책과는 좀 다르다. 당시 일본은행은 제로금리에도 기업들의 자금난이 좀체 풀리지 않자 중앙은행에 개설된 시중은행 무이자 당좌예금 계좌에 일정액의 돈이 쌓일 때까지 돈을 풀어주는 사상 유례없는 양적완화 정책을 폈다. 그러나 이 방식은 성공하지 못한 것으로 평가된다. 금고에 돈이 아무리 쌓여도 부실을 우려한 은행들이 기업 대출에 적극 나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본은행이 이번엔 은행을 통해서가 아니라 돈에 목마른 기업에 직접 자금을 공급키로 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하지만 이번 조치가 효과를 발휘할지는 두고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구마노 히데오 다이이치생명 이코노미스트는 "지금 내놓은 조치들이 경제 붕괴를 막을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며 "일본은행이 내년 1분기 중 정책금리를 0%까지 낮출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엔화 가치는 1엔 정도 낮아진 달러당 89엔대 초반으로 떨어졌다. 도쿄 증시는 다우지수 급락 영향으로 오전 내내 약세를 보이다 일본은행의 금리인하 발표 직후 반짝 상승했으나 다시 하락세로 돌아서 78.71포인트(0.91%) 떨어진 8588.52로 마감했다.

도쿄=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