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 '지린내'가 코끝에 진동했다. 낡은 비닐로 바람막이를 한 문 앞에 놓인 커다란 대야.노란 액체가 보였다. 추운 화장실 가기가 불편했던 누군가의 용변이 분명했다.

그제서야 어깨에 짊어진 연탄의 무게보다 더 무거운 달동네 주민들의 '삶의 무게'가 눈에 들어왔다. 한 명이 간신히 들어갈 만한 좁은 통로.다닥다닥 붙은 월세 15만원의 단칸방들.제대로 된 욕실도 없어 시멘트 바닥에서 찬물로 몸을 씻어야 하는 주민들에게 연탄 한 장은 '추억'이 아닌 '현실'임에 분명했다.

하늘이 잔뜩 흐린 지난 9일.서울 중계본동 연탄은행을 찾았다. 오후 2시.이날 함께 봉사배달을 한 변상무 증권선물거래소(KRX) 본부장보와 직원 7명이 도착했다. "안녕하세요. 연탄배달 자원봉사 체험나온 기자입니다. " 기대,걱정,설렘 갖가지 감정이 뒤엉켜 서먹하게 인사를 건넸다.

'탁,탁' 한장 무게가 3.5㎏인 연탄이 지게 위에 올려질 때마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총 7장이면 24.5㎏."자,첫 번째 목적지는 중계교회 위 담배가게 옆집입니다. " 엉거주춤한 자세로 한 발짝씩 내디뎠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오로지 걸어야 한다는 생각만 있을 뿐.'헉,헉' 거친 숨소리가 절로 나왔다. 손수레는 그나마 나았다.

장정 8명이 달라붙어 '영차영차' 구령을 붙여가며 언덕길을 넘었다. 한숨을 돌리고 나선 마지막 배달.미리 나와있던 이매실 할머니(72)가 "이쪽이에요"라고 손짓을 한다. 자원봉사자들이 광에 있던 연탄재를 내다 버리자 "고맙다,고맙다"는 말만 거듭한다. 이날 배달한 연탄은 총 500장.

2003년 시작된 중계동 연탄은행(전국 21개)에는 하루 평균 2~3팀의 자원봉사단이 찾는다. 원래 연탄 한 장 가격은 450원이지만 배달을 시키면 600원으로 훌쩍 뛴다. 연탄을 한 장이라도 더 공급하려면 배달료를 아껴야 하는 게 필수다. 그래서 자원봉사자가 필요하다. 연탄은행을 처음 시작한 허기복 목사는 "거주자의 대부분이 노인들이라 연탄을 배달해 주는 자원봉사는 큰 힘이 된다"고 말했다.

이곳에 사는 700세대 중 연탄세대는 400세대.최근 경기가 나빠지면서 연탄세대가 늘고 있다. 연탄은행의 신미애 팀장은 "최근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빈집들이 속속 채워지고 있다"며 "연탄수요가 작년에 비해 7% 가까이 늘었다"고 전했다.

"많이 힘드셨죠.그래도 마음만은 좋지 않나요. " 코끝에 땀이 송글송글 맺힌 증권선물거래소의 조장현 팀장이 말을 건넨다. 오후 6시.모든 배달을 마치고 막걸리 한 잔씩을 건네며 주고 받은 대화 속에서 하루 하루 취재현장에서 켜켜이 묵혀뒀던 마음의 연탄재까지 땀으로 씻어버린 기분이었다. 힘들여 배달한 연탄으로 이곳 주민들이 따뜻한 밤을 보낼 수 있다면….

연탄은행 후원 및 자원봉사 문의 http://www.babsang.or.kr

성선화 기자 d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