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

영화산업 10년 전으로 되돌아가, 목표 집착한 묻지마 지원은 곤란

딱 10년 전이다. 외환위기 직후 들어선 국민의 정부는 1998년 위기에 처한 이 땅의 차세대 먹거리 전략으로 '문화산업' 육성을 내걸었다. 이어서 99년 '문화산업 진흥 5개년 계획'을 수립하고 '문화산업 진흥기본법'을 제정했다.

문화산업의 필요성이 얼마나 강조됐던지 당시 문화부 는 물론 다른 부처까지 문화산업 관련 정책에 신경을 곤두세웠던 기억이 생생하다. 관련 예산과 기금 증가가 한 몫 했을 것도 틀림없다.

본격적으로 나선 건 그때부터지만 문화산업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 건 93년 '쥬라기 공원'의 대박 이후다. 영화 한 편 수익이 우리나라 1년 자동차 수출 수익을 능가한다는 말이 번지더니 급기야 94년 문화부에 문화산업국이 신설됐다.

문화산업을 발전시켜 국가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고 문화정체성을 확립하며 신기술에 탄력적으로 반응한다는 목적이었다. 이후 정부는 95년 '음반ㆍ비디오물 및 게임물에 관한 법률'을 개정,게임과 컴퓨터 프로그램을 비디오 범주에 포함시켰다. 96년엔 케이블TV와 부산영화제가 생겨났고,97년 4월엔 영화 제작 편수조절제가 폐지됐다.

국민의 정부는 여기에 더해 각종 규제를 대폭 완화했다. 99년 2월 영화업을 등록업에서 신고제로 바꾸고,컴퓨터게임장 및 노래연습장 소관을 '공중위생법 풍속영업 규제에 관한 법률'에서 '음반 비디오물 및 게임물에 관한 법률'로 변경하고,2000년엔 게임제공업을 등록제에서 신고제로 전환시켰다.

2003년 출범한 참여정부 또한 문화산업 5대 강국 실현을 목표로 '게임산업진흥 중장기 계획'을 내놨다. 성과는 괜찮은 듯했다. '쉬리'를 시작으로 '친구''실미도''태극기 휘날리며'가 계속 대히트,99년 16.5%이던 객석점유율이 2006년 73.9%까지 올랐다. 국제영화제 수상이 잇따랐고,게임 수출도 급증했다.

'겨울연가'를 비롯한 드라마 한류 또한 문화산업 바람에 한 몫 보탰다. 그러나 영화 쪽은 2006년을 고비로 분위기가 반전됐다. 제작편수와 관객 모두 줄었다. 뿐만 아니라 10년 동안 5000억원 이상의 자금이 투여됐음에도 수출액이나 편당 가격 등 해외경쟁력은 10년 전으로 되돌아갔다는 평가다. 한류는 역풍을 맞고 종주국이라던 온라인 게임 부문도 선진국은 물론 중국 등 후발국의 거센 추격으로 위상이 전같지 않다고 한다.

짧게는 10년,길게는 15년에 걸친 각종 법적 제도적 지원과 세금 퍼붓기에도 불구,문화산업 5대 강국의 꿈은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 문화체육관광부가 다시 문화산업 육성이라는 기치를 높이 들었다. 세계 5대 문화콘텐츠 강국을 실현하겠다며 만화 애니메이션 캐릭터 등 문화콘텐츠 육성을 위해 5년간 4132억원을 투입한다는 '100년 감동의 킬러콘텐츠 육성전략'과 컴퓨터그래픽을 비롯한 차세대 융합형 콘텐츠 육성책,게임산업진흥 제2차 중장기계획도 내놨다.

문화산업 육성의 중요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문제는 대대적인 지원과 관련 기관 설립에 상관 없이 잠시 반짝했을 뿐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게임산업 중흥을 위한 온갖 조치는 2005년 '바다 이야기'사건으로 전 국민의 사행성 오락화를 부추겼다는 비판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아케이드 산업 진작 및 20개의 도심형 게임 테마 엔터테인먼트 공간 조성 결과가 걱정스러운 것도 그런 까닭이다.

영화에서 보듯 돈이 되면 정부가 나서지 않아도 뛰어드는 사람이 늘게 마련이다. 게임도 같다. 목표에 집착해 결과를 감안하지 않은 규제 완화나 무작정 돈을 쏟아붓는 식은 재고돼야 한다. 성과에 대한 철저한 검증과 선별 지원이 이뤄지지 않는 한 문화산업 육성은 또 다시 포장만 바꾼 구호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