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는 자산관리공사(캠코)를 통해 저축은행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부실채권 1조3000억원어치를 매입한다고 발표했다.

김광수 금융위 금융서비스국장이 지난 3일 브리핑을 막 끝낼 무렵 옆에 있던 부하직원이 쪽지를 건넸다. 김 국장은 쪽지를 보더니 "캠코가 PF 부실채권을 매입하는 것은 캠코 고유계정을 사용하는 것으로 부실채권정리기금과 같은 '공적자금'이 아니다"고 밝혔다. 설명이 시작되면서 모 언론사가 캠코의 부실채권 매입을 '공적자금' 투입이라고 보도했다는 쪽지를 보고 "잘못된 보도"라고 해명한 것이다.

김광수 국장은 다음 날 브리핑에서도 캠코의 부실채권 매입이 '공적자금'이 아니라고 재차 강조했다. 공적자금관리특별법에 의해 조성되는 자금이 아니라 산업은행이나 수출입은행 같은 국책은행이 공급하는 정책자금 성격이라는 설명이었다.

국민들이 보기에는 비슷한데 정부는 왜 '공적자금'이라는 말에 이같이 민감할까. 외환위기의 악몽 때문이 아닌가 싶다. 정부는 당시 두 차례에 걸쳐 총 170조원에 달하는 공적자금을 조성해 민간 금융회사의 부실채권을 사들이고 은행에 직접 자금을 투입했다. 모두 국민들 부담이었다. 정부는 국민의 지탄을 받았고 '공적자금'은 정부의 정책 실패를 상징하는 단어가 됐다.

공적자금을 받은 금융회사에 대해선 대규모 감자(減資),경영진 교체,감원 등 구조조정으로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정부와 금융회사들은 가능하면 공적자금 투입을 꺼린다. 정부가 2003년 외환은행을 불가피하게 론스타에 매각한 것도 최대한 공적자금을 투입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금융위기가 심화되면 금융회사 구제를 위해 '공적자금'이 들어가야 할지 모른다. 국민들이 과연 용납할지 의문이다. 은행들은 매년 1조원씩 흑자를 내면서 성과급 잔치를 벌이다가 밑동이 썩어가는 줄 몰랐느냐는 지적이 제기될 것이다. 금융감독당국은 은행들이 대출경쟁을 벌이면서 외화를 과다하게 차입할 때 무엇을 감독했느냐는 비판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공적자금'만 나오면 정부나 금융회사들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지 모른다. 상황은 그들에게 불리하게 전개되고 있다.

정재형 경제부 기자 j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