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팀 = 글로벌 경기 불황이 계속되면서 국내 산업계가 연말에도 움츠러든 어깨를 펴지 못하고 있다.

좋은 시절 같으면 두툼한 `연말 보너스' 봉투를 직원들에게 나눠주며 증산을 독려했겠지만 수출이 급감하고 내수까지 위축된 지금은 사정이 반대다.

연말 특별상여금과 성과급을 없애거나 줄이는 것은 물론 비용 절감을 위해 생산라인을 멈추고 직원들에게 무급 또는 유급 휴가를 강제하고 있다.

생산량 조절의 차원도 있지만 무엇보다 인건비를 조금 줄여보려는 시도다.

직원들 입장에선 사기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최근 경기 상황을 모르는 바도 아니니 "월급만 안 깎여도 좋겠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전자업계 `추운 겨울'

수출 급감과 반도체 및 LCD 공급과잉 등 악재가 겹치면서 연말에 재충전 휴가를 적극 권장하는 등 자체적인 근무일수 조정에 들어갔다.

삼성전자는 전사 차원의 연말 장기휴가 계획은 없지만 총괄별, 사업부별, 팀별로 연월차 범위에서 재충전 휴가를 권장토록 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거의 모든 라인이 정상 가동될 것으로 보이나 노후화로 퇴출이 결정된 기흥공장 3라인의 150㎜ 시스템 LSI 생산라인의 경우 설비 매각 작업이 진행 중이어서 근로자들에게 연말 휴가를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통상 성과에 따라 연봉의 최대 50%까지 지급해온 이익분배급과 반기에 한번씩 기본급의 최대 150%까지 주는 생산성격려금도 크게 줄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다.

애니콜 휴대전화를 생산하는 정보통신 총괄의 무선사업부의 경우 매년 연봉의 50%에 달하는 성과급을 받아왔지만 올해는 무선사업부조차도 지급 규모가 줄 것이란 예상이 나오고, 지난해 50% 상한까지 챙겼던 디지털멀티미디어 총괄의 비주얼 디스플레이 사업부도 봉투가 얇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시황 악화와 공급 과잉으로 최악의 한 해를 보낸 반도체와 LCD 부문의 성과급은 최근 몇 년 새 가장 낮은 수준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삼성 관계자가 전했다.

LG전자의 경우 `샌드위치 데이'인 오는 31일과 내년 1월2일에는 연차가 남아있는 직원들에 한해 재충전 휴가를 쓸 수 있도록 했다.

올해 최고의 영업실적을 보인 만큼 성과급에 대한 기대감도 있지만, 내년 경제상황이 더욱 어려울 것이란 전망 때문에 실제 지급액은 기대에 못 미칠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하이닉스반도체는 노사가 인력조정, 무급휴직, 임금삭감 등 공동 자구노력을 기울이기로 전격 합의, 전 직원이 내년 1월부터 4월에 걸쳐 2주씩의 무급 휴직을 감수하고 오는 25일부터 내년 1월 4일까지 집단 휴가를 실시하기로 했다.

또한 노사 합의로 최고경영자(CEO) 30%, 기타 임원은 10∼20% 이상 임금을 삭감하는 동시에 노조도 최대 15%의 인건비 절감 효과가 있는 인력조정안에 동의했다.

◇건설ㆍ운수ㆍ여행 "인건비 절감 급선무"

힘든 한 해를 보낸 건설ㆍ운수ㆍ여행업계는 연말 인건비 절감을 통해 고비를 극복하려는 대표적인 업종들이다.

특히 고유가와 고환율에 시달렸던 항공ㆍ해운업계와 여행업계에서 `특별 상여금'이란 단어는 사치로 여겨질 정도다.

대한항공은 정기 상여금만 지급키로 했고 매년 실적에 따라 특별상여금을 지급했던 아시아나항공도 올해는 이를 기대하기 어려운 분위기다.

그룹의 대북 사업이 어려움을 겪는 현대상선도 특별 상여금 지급 여부가 불투명한 가운데 인건비 절감을 위해 직원들에게 연차 휴가를 쓰도록 하고 있다.

하나투어, 모두투어, 롯데관광 등 여행사들도 연말 보너스 지급을 엄두도 내지 못하는 것은 물론 직원들에게는 연차 휴가 사용을 독려하고 있다.

한 여행사 관계자는 "월급만 안 깎여도 다행인 판국이니 보너스는 꿈도 꾸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대우건설, 현대건설, GS건설, 대림산업 등 상당수 대형 건설사들은 성탄절과 주말 사이에 낀 26일에 전체 휴무를 하기로 했다.

역시 직원들이 연차 휴가를 소진하도록 하려는 조치다.

해마다 특별 상여금을 지급해온 건설업체들도 어려운 사정 때문에 `연말 보너스'를 주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현대ㆍ기아 빼고 車업계 장기휴무

자동차 판매 격감으로 1위 업체인 현대ㆍ기아차를 제외한 대부분 업체가 라인을 멈추고 연말 유급휴가를 실시키로 했다.

GM대우는 오는 22일부터 근무일수 기준으로 8일간 전 공장 가동을 정지한 채 일부 필수 인력만 남기고 생산직과 사무직 모두 유급휴가를 보낸다.

성과급도 기본급의 200%에 달하는 액수를 모두 줄지, 다소 조정할지를 놓고 고민 중이다.

르노삼성은 오는 24~31일 생산라인을 중단키로 함에 따라 생산직 근로자들이 휴무에 들어가며, 쌍용차는 오는 17일부터 2주간 모든 공장을 멈출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쌍용차는 노사간 라인 전환배치 합의로 350여 명의 잉여 인력이 발생함에 따라 이들에 대한 유급 휴업도 결정한 상태이며, 특별 상여금은 커녕 경영 정상화 전까지 주택융자금 지원, 학자금 보조와 같은 사원복지 혜택들이 잠정 중단된다.

반면 현대차와 기아차는 이미 잔업 축소와 특근 횟수 조정 등으로 생산 물량을 조절하고 있는 만큼 공장 가동을 멈출 계획이 없고, 상여금과 성과금도 노사 합의대로 지급할 예정이다.

다만 현대차는 싼타페와 베라크루즈를 생산하는 울산 2공장에서 특근 및 잔업을 줄이고 정상근무 시간 중 4시간은 교육을 실시하는 등 연말 근무 조건을 다소 변경했다.

기아차도 스포츠유틸리티 차량을 생산하는 일부 라인에 대해 잔업과 특근을 중단하는 한편 소하리 공장 카니발 라인을 개조해 프라이드를 생산할 수 있도록 라인조정작업(혼류생산)을 벌이는 등 공장별 물량을 재조정하고 있다.

◇정유ㆍ유통 '하던대로'

정유업계는 장치 산업이라는 특성상 365일 공장을 가동하고 있어 일부 감산에도 장기 휴가는 실시하지 않는다.

SK에너지 관계자는 "최근에는 석유화학 시장이 조금씩 살아날 기미도 보이고 있어 특별하게 휴가 조치는 없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3~4분기 실적이 좋지 않았던 만큼 연말 특별 보너스는 아직 계획이 잡혀 있지 않다.

성과급제를 도입한 SK에너지는 매년 경영 실적에 따라 이듬해 1~2월께 사업부, 팀별, 개인별 성과급을 지급하는 대신 특별 성과급은 주지 않기로 했고, GS칼텍스도 올해는 특별 보너스 계획이 없는 상태다.

유통업계도 산업적 특성상 장기휴무 계획은 없고 연말 성수기임을 고려한 듯 특별 성과급을 주는 곳도 있다.

롯데백화점은 장기휴무를 하지 않을 방침이며, 직원들이 개별적으로 2~3일 정도의 `겨울휴가'를 사용할 수 있다.

또 12월에 작년과 비슷한 수준인 100% 정도의 보너스를 지급할 계획이다.

신세계 역시 장기휴무 계획이 없고 아직 경영성과가 확정되기 전이어서 성과급 지급 문제도 검토하지 않은 단계이다.

◇전자업계 임원 장기성과급 관심

전자업체 임원들의 경우 삼성과 LG전자 모두 처음으로 적용하는 장기 성과급이 얼마나 될지가 관심사다.

삼성전자는 2005~2007년 임원으로 근무한 400여 명에 대해 평균 10억 원 안팎의 장기성과급이 지급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LG전자도 지난 2005년 스톡옵션제 폐지 후 도입된 장기성과급 제도에 따라 임원으로 3년 이상 근무한 사람에게 상당액의 성과급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양사 모두 올 4분기 실적이 확정돼야 성과급 규모를 정할 수 있기 때문에 내년 1월에나 실제 지급이 이뤄진다.

삼성 관계자는 "일단 실적이 얼마인지 확정돼야 하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액수를 거론할 단계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LG전자의 한 관계자는 "성과급은 과거 실적이 기준이므로 경기가 어려워도 줘야 하고 노사간 합의를 지켜야 한다는 점도 있다"라고 한 반면 다른 관계자는 "올해 성과에 대한 기대는 있지만 경기가 어렵고 내년에는 더욱 힘들다고 하니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 모두 고민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3년 이상 장기적으로 실적을 평가하는 임원과 1년 단위로 성과급 규모를 정하는 직원들과 격차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도 경영진의 고민이다.

(서울=연합뉴스) lesli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