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 통합법을 2009년 2월부터 예정대로 시행하는 것은 불황에 나이트클럽 신장개업하는 꼴이다."

장하준 영국 캠브리지대학 교수는 지난달 24일(현지시간) 한국개발연구원과 한국언론재단이 공동 개설한 금융디플로마 해외과정 참여 언론인들과 캠브리지대에서 가진 간담회에서 최근 전세계적인 금융위기를 맞이한 가운데서도 정부가 자본시장통합법의 시행을 강행하려는 데 대해 이렇게 비판했다.

장 교수는 "영국도 한국이 시행하려는 자본시장통합 정책을 시행했지만 현재와 같은 전무후무한 금융위기를 겪고 있다"면서 "현 시점에서 개방을 한다고 해도 어느 누가 한국에 들어오겠느냐"고 반문했다.

장 교수는 특히 대공황에 버금하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금융과 실물의 격차를 줄이는 노력이 반드시 수반되어야만 정상화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벌목과 고무생산이 주력사업이었던 노키아가 전자사업부를 만들어 흑자를 내기까지 17년이 걸렸듯이 실물은 호흡이 긴 반면 금융은 분초를 다툰다"며 "긴 호흡을 필요로 하는 사업들이 성공하기 위해서 금융과 실물의 시차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10년간 외국자본 개방으로 신자유주의가 확산되면서 기업의 연구개발이 소홀해지고 금융과 실물경제의 괴리현상이 점점 심화되는 등 '잃어버린 10년'이 초래됐다는 것.

장 교수는 "제조업 부문의 이윤율로 볼때 3-6%대 성장이 정상 속도인데 반해 지난해 국내 종합주가지수는 1000돌파 후 2년도 채 안돼 2000을 찍는 등 금융과 실물의 격차가 더 벌어졌었다"면서 "이는 파생상품을 인정하고 은행이 가질 수 있는 자산 규제도 풀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장 교수는 "파생상품을 규제하고 사모펀드의 투명성을 높여 누가 어떻게 돈을 움직이는지를 파악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금융규제가 경기변동을 줄여나가는 쪽으로 움직일 수있도록 은행 BIS(국제결제은행) 비율 등도 조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외환위기 때나 지금이나 경기하강 시 자산가격은 떨어지는데도 은행들은 BIS 비율을 맞추기 위해 대출회수에 열을 올리니 경기가 더 경색될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면서 "감독당국은 개별 은행의 건전성만을 볼게 아니라 국민경제 전체 틀에서 경기변동과 반대로 갈 수 있도록 제도를 수정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또 금융규제는 완화가 아닌 강화로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금융은 문제가 발생하면 국민의 세금이 투입되어야 하기 때문에 규제를 다시 엄격하게 해야한다"면서 "공적자금 투입 시 도덕적 해이를 걱정하는 시각도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대공황과 같이 다같이 망할 수밖에 없는 만큼 미리 규제해서 차단할 것"을 주문했다.

아울러 "소금이 혈압에 좋지 않다고 안먹으면 사람이 죽 듯이 뭔가 이롭다고 해서 끝까지 그 방향으로 가기만 하면 좋은 것이 아니다"며 "단선적인 관계만 볼 경우 규제를 완화하면 좋은것 아니냐고 하겠지만 규제가 풀리면 묶는 것도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명박 정부의 감세와 재정확대 정책에 대해서는 주요 대상과 사업의 선별적 차별화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장 교수는 "단기적 경기부양 효과를 생각하고 세금을 깎는다면 소득이 낮아서 버는 것을 다 써야 하는 저소득층의 세금을 내려주는 것이 맞다"면서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부자를 위한 감세정책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재정확대에 대해서도 "정부의 재정지출이 사회간접자본(SOC)에 집중돼 있는데 포화상태인 아파트 건설 등을 또 시행하면 문제가 될수밖에 없다"면서 "핀란드와 같이 연구개발 등에 장기투자를 해야 자본시장 개방으로 '잃어버린 10년'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장하준 교수는?>

86년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왔다. 영국 캠브리지대학에서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고, 지난 1990년 10월 만 27세의 나이로 한국인 최초의 캠브리지대 교수가 됐다.

그는 영국에서도 주류경제학이 아닌 '제도경제학'이라는 독특한 분야를 전공했다. 영국과 미국 등 선진국들의 위선적인 보호무역 정책을 꼬집은 저서 <사다리 걷어차기(Kicking away the ladder)>를 지난 2002년 출간했다.

이어 2003년에는 신고전파 경제학에 대안을 제시한 경제학자에게 주어지는 '뮈르달상'을 한국인 최초로 수상했다. 2005년에는 레온티예프 상을 최연소로 수상했다.

지난해 출간한 '나쁜 사마리아인' 은 최근 국방부에 의해 '불온서적'으로 지정되면서, 일반인들에게까지 주목을 받고 있다.

한경닷컴 변관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