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위기상황 처방ㆊ진단 못내리고 '전전긍긍'
"학생들에게 뭘 가르쳐야 할지도 난감" 고민

경제가 어려울수록 사람들은 경제학자들이 내려주는 '진단과 처방'에 목말라한다. 하지만 전대미문의 금융위기 속에 경제학자들은 하나 같이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사람들이 기대하는 처방은 고사하고 경제 상황에 대한 진단조차 제대로 내리고 있는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도 예측 못했다

경제학자들의 고민은 '사태가 여기까지 오리라고 제대로 예측한 이가 없었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이만우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에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120억달러 풀려 있는 게 '언젠가는 화근이 될 것'이라고 두루뭉술하게 말한 사람은 있었지만 이 정도로 사태가 커질 줄은 그 누구도 몰랐던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송준혁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도 "처음 서브프라임 모기지 쇼크가 왔을 때 국제통화기금(IMF)에서 전 세계 금융회사의 총 손실 규모가 4000억~5000억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예상하자 경제학자들은 대부분 '너무 많이 잡았다'고 반응했다"며 "지금은 1조4000억달러까지 늘어버렸다"고 했다. 그는 "기존의 잣대로는 재단할 수 없는 일들이 펑펑 터지고 있어 예측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털어놨다.

◆내일을 묻지 마세요

경제학계에선 '말을 하면 할수록 손해'라는 분위기다. 한 사립대의 A교수는 "어떤 세미나에서 경제 전망에 대해 발언한 게 다소 빗나가자 한두 달 뒤 학회에서 다른 교수들에게 두고두고 씹히는 '안주거리'가 되더라"며 "그 뒤로는 앞날에 대한 얘기를 최대한 아끼는 편"이라고 말했다. 고려대 경제학과의 B교수는 "기자들이 전화하면 '다른 교수에게 물어보라'고 하면서 전화를 돌려버린다"며 "상황이 워낙 복잡해서 칼로 무 자르듯 코멘트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송 연구위원은 "경제학이란 게 사실 '세테리스 파리부스(ceteris paribus,다른 모든 조건이 동일하다면)'라는 기본 가정 위에 서 있는데 전제 조건들이 너무 빠르게,자주,폭넓게 바뀌고 있어서 뭘 예측하기가 만만치 않다"고 말했다.

서울대 경제학과의 C교수는 "실물과 아주 가까이 있는 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 같은 사람도 '정말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고 하는 판에 책상에 앉아 있는 우리는 오죽하겠느냐"고 했다.

◆뭘 가르쳐야 할지

강단에 서기가 껄끄럽다는 학자도 많았다. 이 교수는 "경제원론이나 화폐경제학을 다시 써야 할 만큼의 사태"라며 "교과서에서 익히 보지 못했던 현상들이 계속 생기고 있어서 학생들도 좀 어리둥절할 것"이라고 했다. 연세대 경제학과의 D교수는 "솔직히 당장 학생들에게 강의를 하는 것보다 어디 틀어박혀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한 연구를 좀 했으면 하는 게 개인적인 욕심"이라고 말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중앙은행 역할론이다. 대부분의 경제학 교과서에는 중앙은행이 '은행의 은행'으로서 금융회사를 통해서만 시장에 개입해야 한다고 돼 있다.

10년 전 아시아 외환위기 당시 홍콩의 중앙은행격인 금융관리국이 증시에서 직접 개별 기업 주식을 사들이자 경제학자들은 일제히 "아무리 궁여지책이라지만 너무 한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지금은 FRB가 담보도 없는 기업어음(CP)을 사들이고 있는데도 아무런 말이 없다.

양동휴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국채를 발행해 중앙은행에 넘기는 경우도 있다"며 "교과서적으로 보면 이는 돈을 그냥 찍어내는 것이어서 인플레이션(급격한 물가 상승)을 유발하는 행위지만 지금은 그런 걱정을 할 시점이 아니다"고 말했다.


차기현 기자 kh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