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무자가 된 기분입니다. '드래곤 라자' 이후 10년이 지나도록 발전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무서운 기분만 들고,독자들의 기대에 부응하려고 노력했으나 충분히 만족시켜 드리지 못해 죄송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

소설가 이영도씨(36)의 장편 판타지 소설 '드래곤 라자'(황금가지)는 1998년 발표 당시 하나의 '사건'이었다. 이 소설은 인간 소년 후치와 엘프 이루릴 등 여러 종족으로 이뤄진 일행이 인간과 드래곤을 연결해주는 '드래곤 라자'를 찾아가면서 벌이는 모험을 다뤘다. 지금까지 국내에서만 100만부 이상 팔리며 새로운 장르문학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일본 40만부,대만 30만부,중국 10만부 등 해외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2004년에는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태성출판사)에 수록됐고,올해 대전교육청 모의고사 윤리 시험 지문으로 출제되기도 했다.

이씨는 '드래곤 라자' 10주년을 맞아 신작 장편소설 '그림자 자국'(황금가지)을 출간하고 '드래곤 라자'양장본도 내놓았다. 지난달에 나온 '드래곤 라자'와 '그림자 자국' 한정판 2000세트는 몇 분 만에 예약판매분이 매진돼 화제를 모았다.

신작 '그림자 자국'은 '드래곤 라자'의 속편이자 오마주다. '드래곤 라자'에서 1000년이 흐른 후 벌어진 인간과 드래곤의 사투를 다뤘다. "첫 작품인 '드래곤 라자'는 형제들 중 장남같이 느껴지는 소설이지요. '그림자 자국'은 이후 달라진 나를 표현해본 작품입니다. "

PC통신에 기반해 소설을 발표해온 이씨는 소설을 '쓴다'가 아니라 '두드린다'는 표현을 썼다. 그는 "글을 읽기 위해 쓴다"면서 "내가 쓴 글을 읽으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게 좋아서 글을 쓴다"고 말했다. 그는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면 어떻게든 글이 나온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얼개를 머리 속에 넣은 상태에서 두드리기 시작한다"고 덧붙였다.

많은 작가들이 인터넷 연재를 시작하고 있지만 막상 PC통신으로 글쓰기를 시작한 그는 선뜻 인터넷 연재에 도전하지 않고 있다. "PC통신 시절에는 표현 방법이 적어 글만으로 개성을 나타낼 수 있었고 '글은 글이고 글쟁이는 글쟁이'로 분리돼 있었는데,요즘 인터넷에서는 작가와 글이 섞이는 느낌이 들어 낯설어요. 독자들의 반응을 즉각적으로 알 수 있는 사이버 공간 연재의 즐거움이 있으니 저도 시대에 맞게 정서를 바꾸도록 노력해 보죠."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