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수출 증가율 두자릿수 급락

세계 경기 침체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한국의 수출이 거의 모든 지역,모든 품목에서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다.

지난달엔 13대 주력 품목 중 3년치 일감을 쌓아둔 선박류의 수출만 늘었을 뿐 12개 품목의 수출은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크게 감소했다. 10월만 해도 대부분의 지역에서 증가세를 유지했던 수출은 중동을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감소세로 돌아섰다.

특히 한국 수출의 20%를 차지하는 최대 시장인 중국으로의 수출 감소세가 확연하다. 지난달 중국에 대한 수출은 27.8%나 급감해 감소율이 전달(―2.6%) 보다 10배 이상 커졌다.

◆무너지는 중국 시장

최대 시장인 중국으로의 수출이 급감한 주 요인은 현지에 진출한 한국 투자 기업들이 생산량을 크게 줄이고 있어서다. 미국 유럽 등 중국의 주요 수출 대상국 경기 침체로 중국 내 다국적 기업들이 원자재 및 부품의 수입을 크게 줄이거나 중단하고 있는 것이다.

지식경제부 관계자는 "수출 전진기지가 밀집한 광둥성 등지로의 한국산 원자재와 부품 수출이 중국의 대 미국,EU 수출이 줄면서 함께 격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민간연구소들에 따르면 한국의 대중국 수출의 50%는 현지에 투자한 한국 기업이 차지하고 있다.

현지 기업 관계자들도 이 같은 분위기를 생생히 전하고 있다. 광저우의 한 한국 철강수입사 관계자는 "11월부터 철강소재를 한국에서 1t도 들여오지 않았고,내년 1월 말까지는 수입 물량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무방향성전기강판 가격이 t당 1000달러에서 400달러로 급락할 정도로 수요가 줄어 재고를 소진하는 게 급하다는 것이다. 광저우의 한 석유제품 도매상은 "t당 900달러 하던 폴리비닐 계열의 제품들이 400달러 선으로 추락해 유통상들이 연쇄 도산하고 있다"며 "당분간 (한국에서의) 수입 물량은 크게 감소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에 대한 전자부품 수출 역시 급감하는 추세다. 박근희 중국 삼성 대표는 "세계 노트북 PC의 90%를 생산하는 중국 내 메이커들이 지난달부터 생산량 조절에 들어갔다"며 "노트북 PC뿐 아니라 휴대폰 등에서도 같은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데, 이는 한국에서 중국으로 수출하던 반도체와 LCD 물량이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설비 투자 위축도 한국산 기계의 수입 감소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에서 공장자동화 설비를 수입해 중국에 판매하는 김영민 만형기계 사장은 "10월 이후 단 한건도 계약이 성사된 게 없다"며 "방직기계 등은 오히려 중국 기업들이 중고품을 매물로 내놓고 있어 신규 수입 판매는 당분간 어려울 것 같다"고 전했다.

◆잇따르는 수출 주문 취소



여기에 더해 중국은 물론 주요 수출 대상국 수입업자들이 주문 물량을 축소 또는 취소하고 있어 향후 수출경기에 대한 예측 자체가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

지경부에 따르면 일반기계를 수출하는 I사는 최근 유럽 수입업체로부터 전체 수출 물량의 10%에 해당하는 주문 계약 취소 통보를 받았다. 또 철강제품을 수출하는 H사는 지난달 거래 업체인 나이지리아 기업이 철강가격 하락 등을 이유로 H형 형강 가격을 계약가보다 20%나 낮춰달라고 한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수출액의 20%가 날아간 셈이다.

수입업자가 통관된 수출품 인수를 거부해 수출기업들이 피해를 입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최근 파키스탄으로 석유화학 제품을 수출한 O사는 통관까지 끝냈지만 제품 인수를 거부당하고 말았다. 운송 기간에 루피아화가 폭락하고 시장이 급격히 위축되자 수입업자가 사소한 서류상의 하자를 문제삼은 것이다.

지경부 관계자는 "수출경기가 한치 앞을 예상할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고 있다"면서 "과거엔 제대로 들어맞았던 자료를 토대로 월간 수출 전망,무역수지 전망을 내놓는 게 의미가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수출은 경제성장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지금 추세대로라면 내년 경제 전망은 어두울 수밖에 없다.

베이징=조주현 특파원/류시훈 기자 bad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