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 부진ㆍ수출 둔화ㆍ투자 급감 '3중고'
전문가들 "선제적이고 과감한 정책 필요"

국제 금융위기로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 경제가 침체되면서 한국 경제도 조만간 '마이너스 성장'에 빠져들 것이라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가뜩이나 내수경기가 부진한 가운데 성장을 뒷받침해오던 수출마저 급속히 둔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주저앉는다면 2003년 '신용카드 사태' 이후 6년여 만에 처음이다.

◆당장 4분기부터 고비

국내외 예측기관들은 대부분 내년도 국내 경제성장률이 전년 동기 대비 2~3%대를 유지하겠지만 전분기 대비로는 조만간 마이너스 성장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실제 전분기 대비 성장률은 작년 3분기 1.5%에서 올해 3분기 0.6%로 '반토막 이하'로 떨어졌다. 지금 추세라면 이르면 올해 4분기부터 마이너스로 내려앉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외국계 투자은행들은 이보다 더 비관적이다. 도이치뱅크와 스탠다드차타드는 내년 성장률을 1%대로 예상했고 UBS는 아예 내년 전체 성장률이 ―3.3%로 곤두박질칠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 경제가 이처럼 마이너스 성장이 우려되는 것은 소비 수출 투자 등 경제 전반이 눈에 띄게 나빠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총생산(GDP)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민간소비는 지난 2분기에 0.2% 감소,이미 오래 전 침체 국면에 진입했다는 분석이다. 최근 주식 펀드 부동산 등 자산가치 폭락으로 소비심리가 얼어붙은 가운데 고용 불안이 심해지고 가계부채 부담이 늘면서 가계의 실질소득이 줄고 있어 향후에도 소비자들이 지갑을 열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동안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하던 수출도 지난 3분기 1.8% 줄어들면서 향후 전망을 암울하게 하고 있다. 오문석 LG경제연구원 상무는 "세계 주요 국가들의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돌아섰다"며 "수출 둔화세가 내년 상반기까지 이어져 성장률을 끌어내릴 것"이라고 지적했다.

설비 및 건설투자도 올 들어 9월까지 전년 동기 대비 0.4% 증가에 그쳐 2001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설비투자 선행지표인 국내 기계수주액은 지난 9월에 33.4%나 감소했다.

허찬국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은 "내수경기 부진과 소비 감소,수출 둔화로 기업투자가 줄고 고용도 불안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부도ㆍ실업 한파 우려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떨어질 경우 국내 경제가 '혹한기'에 빠져들 수 있다. 지금도 상당수 기업들이 판매 부진과 재고 증가로 구조조정 위기에 몰렸고 일부는 아예 문을 닫고 있다. 지난 10월 전국 부도업체 수는 3년7개월 만에 가장 많은 321개로 늘었다. 9월(118개)보다 58% 증가한 것이다. 또 지난 10월 신규 취업자 수는 3년8개월 만에 처음으로 10만명을 밑돌았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상무는 "성장률이 2%로만 낮아져도 이미 침체 국면"이라며 "성장률이 아예 마이너스로 떨어지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가릴 것 없이 모두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경기 부양을 위한 선제적이고 과감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거시경제실장은 "금리를 과감히 낮추고 재정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며 "취약한 부문에 대한 신속한 구조조정도 병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