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회사들 진출지역 정부에 잇따라 구제금융 오청
고용 5만5000명 달해 英ㆍ獨 등 지원여부 고심

파산 위기에 몰린 미국의 세계 최대 자동차업체 제너럴모터스(GM)가 '거지 신세'로 전락했다.

영국 일간 더 타임스는 26일 "GM이 '거지 밥통을 들고 유럽을 떠돌고 있다(GM passes begging bowl around Europe)"고 보도했다. GM이 현금 고갈에 대비,자회사들이 있는 독일 영국 스페인 스웨덴 벨기에 폴란드 등 유럽 지역 각국 정부에 자금을 요청하고 있다는 것이다. GM의 이 같은 행보는 유럽연합(EU)의 자동차산업 지원 대상에 GM 자회사들도 포함되도록 하겠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GM은 포드 크라이슬러 등과 함께 미 의회에 250억달러를 지원해달라고 요청했다가 거절당하고 우선 자구책을 마련해오라는 통보를 받은 상태다.

GM은 최근 유럽 최대 자회사인 독일 오펠에 대한 지원 요청을 시작으로 유럽 각국 정부와 접촉에 들어갔다. 칼-피터 포스터 GM 유럽본부 최고경영자(CEO) 등 오펠 관계자들은 지난 17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를 만나 GM의 파산으로 오펠이 심각한 유동성 위기에 처하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10억유로(약 12억7000만달러)의 신용보증을 요청했다. 독일 정부는 오펠에 대한 지원 여부를 크리스마스 이전까지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GM은 영국에서도 정치인의 손을 빌려 자금 지원을 호소하고 있다. GM의 아스트라 소형차를 만드는 공장이 있는 영국 북서부 엘레스미어항을 대표하는 앤드루 밀러 의원은 "경기 침체가 지속되면 GM은 영국에서도 자금 지원을 받는 게 필요할 것"이라며 "이를 적극 지지한다"고 말했다. 밀러 의원은 특히 GM 영국공장의 환경친화 차량 개발에 대한 지원을 적극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GM은 폴란드 벨기에 스페인 정부와도 각각 비공식 접촉을 갖고 현지 공장이 계속 돌아갈 수 있도록 금융 지원을 해달라고 요청 중이다.



유럽지역 자동차 판매가 줄고 있는 데다 GM에 납품하는 유럽 부품업체들에 대한 신용보증을 중단하는 보험사가 늘면서 GM의 유럽 자회사들은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귄터 페어호이겐 EU 기업ㆍ산업 담당 집행위원이 "오펠이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경영진의 책임이나 오펠 자동차의 품질이 아닌 미국발 신용위기 때문"이라며 "오펠에 대해 독일 정부가 특단의 조치를 취하는 것은 정당한 행위"라고 강조한 것도 이 같은 배경에서 비롯됐다.

더욱이 GM은 100여년 전부터 유럽에 생산 거점을 두면서 적지 않은 인력을 고용하고 있어 GM이 파산에 이를 경우 유럽 경기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GM은 독일에서만 2만5000명이 넘는 종업원을 두는 등 유럽에서 5만5000명이 넘는 인력을 고용하고 있다. 특히 부품업체 등 연관산업까지 포함할 경우 파장은 더욱 클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유럽은 기업에 대한 정부 지원을 엄격하게 규제해 온 데다 건설업계와 다른 제조업계도 자금 지원을 요구하고 있는 탓에 GM의 요청을 흔쾌히 수락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EU는 이날 발표한 경기부양책에서 친환경 차량 개발 지원명목으로 50억유로(약 9조5000억원) 이상을 지원하기로 했다. 단순 운전자금 지원은 없다는 얘기다.

오광진 기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