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재무부가 7000억달러의 금융권 구제금융 중 차기 정부로 넘기려 했던 2차분인 3500억달러를 앞당겨 끌어쓸 전망이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 당선인과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협력하겠다고 말했다.

헨리 폴슨 미 재무장관은 24일 "부실자산구제프로그램(TARP)의 나머지 3500억달러에 대한 의회 승인 요청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고 블룸버그통신이 보도했다. 폴슨 장관은 불과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구제금융자금 2차분의 집행권은 정책의 탄력성을 유지하기 위해 차기 오바마 행정부에 이양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하지만 씨티그룹이 유동성 위기로 흔들리자 나머지 구제금융자금을 조기 집행해야 한다는 쪽으로 방향을 급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 재무부가 현재 남아 있는 구제금융 2차분 가운데 250억~1000억달러를 자동차 및 학자금ㆍ신용카드 대출 등 소비자금융 관련 시장을 지원하는 데 사용하고,이를 위한 별도 기구를 설립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미국 소비자금융 시장의 부진은 금융위기가 실물경제로 전이되는 가운데 더욱 현실화되고 있다. USA투데이에 따르면 지난 3분기 미국의 승용차 구입 할부대출 가운데 30일 이상 연체 규모가 229억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8.1%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사실상 '지불 불능'을 눈앞에 둔 60일 이상 연체 규모는 12.7% 늘어난 70억달러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 인터넷 자동차판매 사이트인 에드먼즈닷컴은 올 연말까지 모두 160만대의 자동차가 할부대출금을 못 갚아 압류될 것으로 예상했다.

부시 대통령은 이날 재무부에서 폴슨 장관 등 각료들과 만난 뒤 "오바마 당선인에게 행정부에서 금융시스템 지원을 위해 취한 조치에 대해 지속적으로 알려주고 있으며,오바마 경제팀과 위기 극복을 위해 계속 공조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또 "지난 23일 페루 리마에서 열렸던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을 마치고 워싱턴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씨티그룹에 대한 구제금융조치를 직접 승인했다"며 "이날 밤에도 오바마 당선인과 씨티그룹 문제에 대해 논의했다"고 설명했다.

미 정부는 지난 23일 씨티그룹 구제를 위해 3060억달러의 부실자산에 대해 지급보증을 제공하고,200억달러의 자본을 추가로 직접 투입키로 결정했다. 부시 대통령은 "필요하다면 우리는 미래에도 금융시스템을 지키기 위해 이런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밝혀 향후 다른 기업들에 대해서도 씨티그룹과 같은 대규모 구제안을 실행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한편 블룸버그통신은 미 정부가 금융위기 타개를 위해 현재까지 쏟아붓는 공적자금 규모가 미 국내총생산(GDP)의 절반에 해당하는 7조7000억달러에 이르고 있다고 보도했다. 여기엔 이미 금융권에 투입된 3조2000억달러와 구제금융 7000억달러,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대출창구 지원금 등이 포함돼 있다. 7조7000억달러는 미 국민들에게 1인당 2만4000달러씩 나눠줄 수 있고,이라크 및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들었던 비용의 9배에 맞먹는 규모라고 블룸버그통신은 전했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