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소미 <더모델즈 대표 somi7@paran.com>

필자가 맡는 프로젝트는 경쟁 입찰을 통해 수주하거나 정소미라는 사람을 믿고 의뢰해 온 것들이다. 이미 여러 차례 패션쇼 등을 함께 해오면서 믿음과 신뢰가 쌓인 고객들은 굳이 형식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 필자를 택한다. 그만큼 신뢰가 쌓이고 전문성을 인정해준다는 뜻이니 필자도 그 마음이 고마워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당연히 일의 집중도나 기쁨,보람도 배가 된다.

프레젠테이션도 나름 의미가 있다. 각 업체가 자신의 능력을 공정하게 평가받을 수 있는 기회이고,광고주도 다양한 아이디어를 접하면서 최상의 파트너를 만날 수 있다. 그러나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하는 입장에서는 공연에 몰입하기도 전에 심사위원들의 각기 다른 생각과 요구를 충족시키느라 에너지를 소진하게 된다. 프레젠테이션 스킬이 부족한 필자로서는 더욱 그렇다. 결과물로 승부하는 것은 자신 있어도 남 앞에 서서 근사한 말솜씨로 생각을 포장하거나,일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질문들을 요령있게 빠져 나갈 줄 모르기 때문이다.

어렵사리 프레젠테이션을 통과한 뒤에 따르는 고민도 있다. 이미 많은 아이디어가 떠올랐고,어떻게 하면 더 멋지고 근사한 무대를 만들 수 있는지 알고 있는데,프레젠테이션을 거치면서 머릿속에 예산에 대한 벽이 쌓여 버린다. 그럴 때마다 필자는 '열심히 해서 고객에게 믿음과 신뢰를 주는 것이 더 큰 수익이지'라며 스스로를 다독인다. 애초 계획보다 더 많은 품을 팔아 정해진 예산이 낳을 수 있는 결과 이상의 것을 만들어내려고 노력한다. 그러다 보니 한번은 클라이언트의 감사를 받는 일도 생겼다. 정신없이 쇼를 준비하고 있는데 직원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광고주가 정확한 행사 비용을 물어보는데 가르쳐 드릴까요?" 주머니 돈을 털어 견적보다 더 많은 비용을 사용한 필자는 거리낄 게 없었다. 감사 결과 당연히 예산보다 지출 비용이 더 컸고,그 결과를 알게 된 감사팀은 오히려 미안해하며 돌아갔다. 그 사건 이후 해당 기업과의 신뢰는 더 깊어졌다.

신뢰는 말로 쌓는 것이 아니라 행동과 마음으로 다져진다. 믿음과 신뢰가 쌓이면 흔히 말하는 갑을관계에서 벗어나 멋진 일을 만들어가는 파트너가 된다. 고객이 감시하지 않아도 스스로의 역할에 충실하면 최고가 된다. 결국 일에 대한 신뢰는 품삯보다 품질 가치를 더 높이려는 '쟁이정신'에서 나온다. 누가 보든 안보든 타인에 대한 신뢰，자신에 대한 신의를 중히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