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을 민영화하면 서비스 가격이 낮아지고 질은 좋아진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해입니다. 무조건 민영화를 하자고 할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효율적인 조직이 될지를 우선 고민해야 합니다. "

30대의 젊은 공기업 컨설팅 전문가는 자신만만했다. 한국에서 공기업에 처음 메스를 들이댔던 IMF(국제통화기금) 사태 직후부터 10여년간 공기업의 생존전략에만 골몰해온 경험이 주는 자신감이다. DJ 정부와 노무현 정부 합쳐 6년간 공기업 민영화 및 혁신을 실무선에서 주도한 대한민국 공기업 개혁의 '산 증인'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의 권순원 전무(39)를 17일 만났다.

공기업 개혁 전문가인 권 전무는 현 정부의 '공기업 선진화 방안'을 어떻게 바라볼까. 그는 "공기업 개혁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고 강조했다. '공기업 선진화 방안'에 민영화하는 공기업 숫자가 얼마 되지 않자 '알맹이가 없다'는 세간의 지적이 잇따르는 데에 대한 반박이다. 공기업은 민간기업과 구분되는 공기업만의 특색이 있는데 무조건 민간 분야의 잣대를 들이대거나 수익성이 좋지 않다고 민영화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권 전무는 "국민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재화나 서비스를 공기업이니까 적자를 보면서도 제때에 공급할 수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어떤 공기업이 적자가 많으니 없애야 한다고 조언하는 보고서도 있다"며 "이는 우리나라 쌀이 비싸다고 생산하지 말자는 것과 똑같은 얘기이므로 공익성을 바탕으로 효율적인 조직을 만들 수 있게 하는 컨설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권 전무가 공기업 개혁과 인연을 맺은 것은 외환위기가 대한민국을 덮쳤던 1997년 이었다.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의 저명한 컨설팅기관인 부즈알랜 앤 해밀턴에서 컨설턴트로 일할 때였다. 그는 기업전략수립 분야에서 일하면서 한국이 선진국의 첨단기술을 따라가지 못하고,중국 등 개발도상국의 추격으로 인해 넛크래커(호두까는 기계) 사이에 낀 호두 신세를 면치 못할 가능성이 높다는 경고를 담은 '21세기를 향한 한국경제의 재도약'이라는 보고서 작성에 참여했다.

보고서가 나온 뒤 IMF 위기가 곧바로 한국을 덮쳤고 정확한 진단을 내린 이 보고서의 작성에 유일한 한국인으로 참여한 권 전무에게 세간의 관심이 쏠렸다. 당시 기획예산위원회 위원장이었던 진념씨가 정부개혁실 공공관리단에 그를 사무관으로 발탁했다.

이후 4년간 권 전무는 한국통신,담배인삼공사,한국중공업,포스코,국정교과서 등 굵직굵직한 기업들을 구조조정하고 민영화하는 작업에 매달렸다. 구조조정을 하면서 그가 목을 자른 사람만 수만명에 이를 정도.한번은 우연히 TV에서 자신이 구조조정한 기업에서 해고된 직원의 아들이 결식아동으로 나온 인터뷰를 보게 됐다. 그 즉시 자신의 한 달치 월급을 결식아동돕기 성금으로 보냈지만 이를 악물고 다시 일에 매달렸다.

권 전무는 민영화 작업을 마무리한 뒤 KTF에서 법인사업팀장으로 잠시 일하다가 노무현 정부 들어서 다시 기획예산처 공공혁신국 공기업정책과 과장으로 복귀했다. 이번에는 차관 시절 그와 머리를 맞댄 김병일 기획예산처장관이 불렀다. 그는 2년간 다면평가,내부관리제도,임금 피크제 등 다양한 혁신 방안을 공기업에 도입하는 역할을 했다.

권 전무는 현재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에서 공공기관 대상 전문서비스 부문인 딜로이트 퍼블릭을 출범시켜 실무를 총괄하고 있다.

박민제 기자 pmj5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