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민주당 후보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던 날,라이스 국무장관은 불타는 듯한 빨간색의 정장을 입고 회견에 임했다. 적진(민주당)의 승리라고 해도,마침내 인종의 벽이 무너졌다는 기쁨이 그의 온 몸으로부터 느껴졌다. 일방적 일국(一國)주의의 끝에 두 개의 전쟁과 전대미문의 경제위기만이 남았다고 한다. 문자 그대로 국난에 봉착한 미국의 많은 국민이 새로운 젊은 지도자에게 회생의 희망을 건 셈이다.

그러나 현실은 간단치 않다. 세계 전체로 확산된 금융 위기는 주요국의 필사적인 유동성 공급이나 금리인하,정책 협조 등으로 일단 진정되긴 했다. 그렇지만 금융 쓰나미의 바닥에서는 미국 자동차회사 '빅3'의 존망 등 실물경제 위기가 도사리고 있다. 신흥국을 포함한 주요 20개국(G20) 회의 등 국제협조가 실패하면 쓰나미의 제2파가 우려된다.

어려운 상황이 지속되는 가운데 한ㆍ중ㆍ일 3개국은 12월 일본 후쿠오카에서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으로부터 독립해 첫 번째 정상회담을 열 예정이다. 경제위기 대응을 위한 협력 강화의 좋은 기회다. 이때 무엇을 서로 이야기해야 할까. 우선은 정보 공유의 강화일 것이다. 중국은 금융ㆍ자본의 자유화가 한국이나 일본만큼 진전돼 있지 않다. 최근 주가와 부동산 가격이 크게 떨어졌지만 쓰나미의 직격은 아니다. 오히려 진짜 영향은 제조업 수주 감소와 위안화 가치 상승으로 인한 실물경제 위기에서 나타날 것이다. 대형ㆍ대량 파산 등 중국이 처음으로 본격적인 산업 구조조정을 경험하게 되면 중국에 진출한 기업이 많은 한국과 일본에도 파장이 불가피하다.

물론 세 나라 사이엔 거시정책 협의채널이 있긴 하지만 낮은 수준이다. 고위급 채널은 아니다. G20 등과 대외 협력의 보조를 맞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ㆍ중ㆍ일이 금융감독 정보나 불량채권 처리 매커니즘의 이해까지 공유하는 것이 시급하다. 구미의 보호주의에 대처하는 것도 중요하다. 대통령뿐 아니라 상ㆍ하원 모두 민주당이 지배하게 된 미국에서 가장 염려되는 점은 보호주의 강화다. 자동차 산업이 파탄 나면 미국의 실업자 수는 300만명을 넘어선다. 파탄을 면하더라도 연말 유통업 등 서비스업 부진이 본격화하면 실업률 상승은 피할 수 없다.

중국은 미국에 압도적인 무역적자 상대국이다. 의회의 동향에 따라 위안화 절상 등의 요구가 거세지면 미ㆍ중 마찰도 예상할 수 있다. 통상 정책 협조로 미국의 일방적인 보호주의에 대항하면서,한국과 일본이 중국의 내수부양을 도와야 한다. 예컨대 중국 내수성장의 걸림돌중 하나인 물류 비용을 줄이는데 적극적으로 협력한다면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미ㆍ중과 같이 일ㆍ중,한ㆍ중 간에도 각각 전략적 대화채널이 설정돼 있다. 경제적인 면에서 보면 한ㆍ중ㆍ일의 산업은 일체화가 진행되고 있어 단순한 투자나 거래 중심의 미ㆍ중관계보다 훨씬 더 이해가 복잡하다. 이번 3국 정상회담이 첫회인 만큼 2개국간 대화의 조정이나,식품의 안전성 문제 등 보다 광역적ㆍ지정학적인 문제를 서로 이야기하는 장소로서 한ㆍ중ㆍ일 회의를 명확하게 자리매김하는 게 좋을 것이다.

이번 회의가 일본엔 극단적인 미국 중심 외교를 수정할 기회이다. 중국도 내수 주도형으로 경제체제를 전환한 경험을 가진 일본과의 대화는 가치가 클 것이다. 한국은 한ㆍ미자유무역협정(FTA)의 조기 비준을 통해 자유무역에 대한 의사를 명확히 하는 것이 일ㆍ중에 대한 교섭력을 높이는 발판이 될 것이다. 오바마 정권의 새로운 미국에 한ㆍ중ㆍ일의 새로운 동아시아가 대응체제를 정비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혹시라도 값싼 감정론으로 놓쳐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