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지 국립발레단장은 요즘 KTX를 타고 대전으로 출장을 자주 간다. 올해 주요 국내 무용 콩쿠르 우승자들의 병역 혜택 문제 때문에 병무청 관계자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작년까지만 해도 국내 주요 발레콩쿠르 우승자는 현역 복무 대신 34개월 공익근무요원 자격으로 의무 공연을 하면 됐다. 하지만 올해부터 병역법 시행령 일부가 개정돼 일정 규모 이상의 국제무용대회 우승자에게만 병역 혜택이 주어진다.

남자 무용수들 사이에서 군복무는 '죽음의 문턱'으로 불린다. 훈련이 힘들거나 복무 기간이 길어서가 아니다. 무용수의 생명은 발목인데 군화를 신고 2년을 지내다 보면 발목 힘이 약해질 뿐만 아니라 유연성도 없어지기 때문이다. 일단 군복무를 하게 되면 주역들도 아예 다른 길을 찾거나 운이 좋아야 조역급으로 복귀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지난 6월에는 한국의 대표 발레리노들인 정주영,백두산,유회웅씨가 한꺼번에 '토슈즈'를 벗고 뮤지컬 배우로 전향했다. 정씨는 600여 작품에 출연한 정상급 발레리노 가운데 한 명이었고,유씨는 국립발레단 소속의 '잘나가는' 무용수였다. 또 백씨는 프리랜서로 한창 주가를 높이던 석사 발레리노다. 정씨는 "국내 콩쿠르 혜택이 없어진 마당에 참가비만 수천만원인 해외 콩쿠르를 무작정 준비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운동선수나 연예인들도 비슷한 처지라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운동선수의 경우 올림픽 아시안게임 세계선수권대회 등 국제대회가 상대적으로 많고 군복무도 상무대에서 하면 된다. 연예인들 역시 군예대로 입대하면 복무기간 중 나름대로 '전공'을 살릴 여지가 있다.

[취재여록] 병무청 찾는 국립발레단장
하지만 발레리노들은 국제콩쿠르 금메달격인 그랑프리를 따도 병무청장이 인정한 국제예술경연대회가 아니면 복무를 해야 하고 군예대 입대 대상도 아니어서 공연생명에 치명적이라는 주장이다.

12일 국립발레단 연습실에서 만난 발레리노 이영철씨는 "군대를 가더라도 최소한 제대 후 무대에 설 수 있을 정도로만 몸을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신영 문화부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