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최대 자동차업체인 제너럴모터스(GM)가 10일(현지시간) 경기침체에 따른 타격으로 주가가 60년 만의 최저 수준으로 곤두박질치는 굴욕을 당했다. 증시에서는 GM은 이제 체면이 아니라 '생존'자체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라는 말까지 나오는 형편이다.

이 회사 주가가 급락한 것은 독일 최대 은행인 도이체방크의 보고서가 결정적인 원인이 됐다는 분석이다. 이 은행의 로드 라체란 애널리스트가 "GM이 파산을 모면하더라도 그와 다름없는 상태를 이어갈 것"이라며 매도의견과 함께 향후 1년간 목표주가를 '0달러'로 제시했다.

이처럼 파격적인 도이체방크의 보고서는 주가가 40% 가까이 떨어지는 속에서도 매도의견조차 잘 안 보이는 국내 증시 관행의 문제점을 새삼 부각시키고 있다. 증권정보업체인 애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올해 국내 증권사들이 내놓은 1만4926건의 투자의견 중 직접적으로 '매도'를 추천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으며 매도와 유사한 '비중축소'만 8건(0.05%) 있었다. 이 때문에 국내 애널리스트들 사이에서는 "한국엔 매도가 없다"는 자조섞인 평가가 나오는 실정이다.

이에 대해 국내 증권사 한 리서치센터장은 "해당 기업과 투자자들 눈치를 보느라 현실적으로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하소연한다. 다른 애널리스트는 "부정적인 보고서를 내면 해당기업 투자자들의 불평과 원성에 일을 못할 정도를 넘어서 때론 두려움을 느끼는 사례도 많다"고 털어놓았다.

최근에는 금융감독기관까지 말리고 나선 상황이다. 실제 한 증권사는 "금융위기로 민감한 시기에 그런 보고서를 왜 썼느냐?"는 압력성 문의를 받은 후 애널리스트들의 입단속에 들어갔다는 얘기도 들린다.

여의도 증권가 일각에서 '목표주가 0달러'에 대해 내심 부러운 시선을 보내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애널리스트들에겐 정확한 기업가치 평가가 생명이자 최우선 과제라는 기본원칙이 철저하게 지켜진 상징적인 본보기이기 때문이다. 우리 증시와 투자문화가 한층 성숙해져 매도의견은 물론 목표주가로 '0'원을 제시하는 애널리스트를 볼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본다.

서정환 증권부 기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