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신용평가사인 피치가 한국의 신용등급 전망을 한 단계 낮춤에 따라 대외신인도 하락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2003년 3월 무디스가 등급전망을 낮춘 것을 빼고는 외환위기 이후 단 한번도 국가신용등급 전망이 내려간 적이 없기 때문이다. 정부는 일단 피치의 이번 등급 전망 수정이 한국이란 특정 국가에 국한된 것은 아니며,글로벌 경기 침체에 따른 신흥시장국 전반의 위험성이 커진 것을 반영한 것이란 입장이다.

실제 피치가 10일 펴낸 '이머징마켓 신용등급 리뷰'는 지난 4일 발표한 '세계경제 전망 보고서'를 기반으로 한 것이다. 피치는 당시 보고서에서 △선진국 경제가 침체로 진입하면서 전 세계 무역이 위축되고 △상품가격의 지속 하락으로 가계,기업의 소비.투자가 감소하는 한편 △글로벌 유동성 축소로 이머징 마켓으로 위험이 전이될 것이란 전망을 내놨다. 선진국의 경기침체로 인해 신흥시장국의 타격이 만만치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이를 토대로 피치는 이날 불가리아 카자흐스탄 등 4개국의 신용등급을 낮추고,한국 말레이시아 러시아 멕시코 등 7개국의 등급전망을 하향 조정했다. 특히 아시아 국가 중에서는 한국과 말레이시아에 대해서만 등급을 낮췄으며 중국 인도 태국 대만 등 4개국의 신용등급과 전망은 종전대로 유지했다. 제임스 맥코맥 피치 아시아 국가신용등급 수석은 "급격한 경기 침체에 따른 은행권의 차입감소(디레버리징) 부담 증가와 자산건전성 악화로 인해 한국의 대외 신용도가 악화될 수 있을 것으로 우려된다"고 등급전망 조정 배경을 설명했다.

이에 대해 최종구 기획재정부 국제금융국장은 "우리나라의 대외의존도가 높아 세계경제 침체로 인해 실물경제가 영향을 받는다고 (피치에서) 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세계경제 침체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등급 자체가 하향 조정된 나라가 있는 데 비해 우리나라의 등급은 유지됐다는 점에서 상당히 긍정적인 모습"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이번 등급전망 하향 조정으로 내년 4월에 있을 피치와의 연례협의 때 우리나라의 신용등급이 낮춰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또 피치의 이번 결정이 무디스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등 다른 신용평가사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와 관련,S&P의 아시아 국가신용등급 책임자인 엘레나 오코로첸코는 이날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최근 한국의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으로 유지했으나 한국 은행권의 자금 수요는 여전히 최대 관심사"라며 "(한국) 은행들의 단기 자금 수요가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