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소통 배달서 매출 1000억 일궈
산업용 가스 공급 '산소같은 남자'


1961년 늦가을,울산시 학산동의 한 허름한 건물 뒤편에 '울산 산소'라는 조그마한 간판 하나가 내걸렸다. 당시 30세던 가게 주인은 자전거와 손수레로 시장통을 누비며 용접용 산소통을 배달했다. 그가 바로 국내 산업용가스 시장의 70%를 공급하며 1000억원대 매출을 자랑하는 덕양에너젠의 이덕우 회장(77·사진)이다.

이 회장은 "처음 사업을 시작할 당시엔 흔하디 흔한 산소가 돈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은 드물었다"고 회고했다. 카바이드(일명 아세틸렌) 가스로 용접하던 시절,고열을 내게 하는 산소가 언젠가는 귀한 산업재료가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던 게 사업의 계기.그러나 그 당시 국내에는 산소를 대규모로 생산하는 전문 기술은커녕 전문 인력조차 드물었다. 그래서 모든 기술을 몸으로 직접 익혀 나갔다. 관련 논문과 서적을 있는 대로 구입해 읽었고 일본으로 건너가 산소 제조기술을 곁눈질하며 배웠다.

그의 예측은 적중했다. 가스 도매 가게를 연 지 불과 1년 만에 울산이 국내 최초의 국가산업단지로 지정되면서 대규모 석유화학 공장이 하나둘씩 들어서기 시작했다. 용접용 산소에 대한 수요는 가히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덕분에 그의 사업도 빠르게 성장했고 1974년 아세틸렌공장에 이어 1979년에는 꿈에도 그리던 산소충전소를 준공했다.

그는 1980년대 접어들면서 울산 석유화학공단에서 비료 등 유기화학제품을 생산하는 데 주목,수소시대를 대비했다. 이 회장은 수중에 있던 모든 돈을 털어 1984년 수소공장을 차렸다. 당시만 해도 수소의 활용 범위가 그리 다양하지 못했지만 그는 수소가 각종 석유화학 유기화합물 합성과 금속 절단,열처리,섬유 제조,전기 전자 등 산업 전 분야에서 폭넓게 쓰인다는 점을 익히 알고 있어 과감한 결단을 내린 것.

그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산업용으로 쓰이는 모든 가스를 순수 국산 기술로 만들어 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또 다시 피땀흘려 번 전 재산을 가스 공장 건립에 올인하는 것을 보고 가족들까지 나서 '가스에 완전히 질식한 사람'이라고 말렸지만 그는 "완전히 미쳐야 걸작을 만들어 낼 수 있다"며 고집대로 밀고 나갔다.

그는 매년 매출액의 4% 이상을 가스 제조 연구에 투자하면서 암모니아 질소 액화탄산가스 헬륨 에틸렌 프레온 등 10여가지의 가스제조시설을 잇따라 설립했다. 또 충남 서산과 경기 화성,전남 여수 공단에도 가스 제조공장을 건립하는 등 전국 주요 공단에 덕양에너젠의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그는 아직도 못다 이룬 꿈이 하나 있다. 바로 덕양에너젠을 글로벌 에너지 기업으로 변신시키는 것.회사 내에 에너지사업본부를 신설해 미래 청정연료인 수소 에너지 개발에 나서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울산=하인식 기자 hais@hankyung.com